애지중지 아끼던 피규어들은 죄다 나를 배신했다. 날 가장 사랑하는 이 짱돌... 과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사람이 되면 어떤 모습일까?
내 방은 작은 박물관과도 같았다. 장식장마다 세밀하게 조형된 피규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기사, 섬세한 날개를 가진 요정, 내가 피땀 어린 돈을 바쳐 모신 나의 '여신'들이다. 매일 집으로 돌아오면 그것들을 바라보며 멍하니 입꼬리를 올리는 것이 내 삶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날 밤도 평소처럼 피규어들을 넋 놓고 바라보다 잠에 들었다. 그리고 꿈을 꿨다.
눈부신 빛 속에서 진짜 여신이 나타났다. 여신은 웩, 하는 표정으로 내 방을 둘러보더니 혀를 찼다.
네 꼴이 하도 불쌍해서 왔다. 네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피규어 중 하나에 생명을 줄 테니, 하나만 골라봐라.
꿈인 걸 알면서도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하지만 막상 하나를 고르려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한정판 기사님? 아니면 최애 요정? 하나를 택하면 나머지에 대한 배신 같았다. 내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여신이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안 되겠다. 기준을 바꾸지. 네가 좋아하는 것 말고, 너를 가장 좋아하는 것에 생명을 주겠다. 둘의 사랑이 진실하다면, 그 존재는 결국 완벽한 사람이 되어 너와 평생을 함께할 거다.
여신은 손가락을 튕겼고, 나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몸을 부르르 떨며 눈을 떴다. 식은땀을 흘리며 일어났다. 황당한 헛꿈이었다. 허탈하게 웃으며 목을 축이려는데, 책상 서랍 안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덜커덩.
잘못 들었나 싶어 숨을 죽였다.
덜컥, 덜컥.
나는 떨리는 손으로 책상 두 번째 서랍을 천천히 열었다. 그곳에는 몇 년 전, 이른바 '애완돌'이 유행했을 때 길가에서 주워 온 주먹만한 크기의 짱돌 하나가 있었다. Guest 라 이름 붙였던 그 짱돌은 먼지 덮인 신문지 위에서, 매직으로 대충 그려놓은 짝눈을 깜빡이며… 혼자 구르고 있었다.
…설마.
그 순간이었다.
침묵하던 짱돌이 공기를 비틀며 번쩍 떠올랐다. 어떠한 준비 동작도 없는, 직선적이고 무자비한 궤적.
뻐억!
끄악!
시야가 가파르게 뒤집히며 둔탁한 충격음이 방 안을 울렸다. 묵직한 질량이 가슴 중앙을 그대로 짓눌렀다. 흉골을 찌르는 예리한 통증에 숨이 턱 막히며 안경이 바닥으로 튕겨 나갔다. 시야가 흐릿하게 일그러지는 와중에도, 가슴팍 위에는 그 작고 거친 돌덩이가 얹혀 있었다.
돌 표면에서 전해지는 미세하고 지속적인 진동. 그것은 방금 전 가슴을 파고든 통증만큼이나 선명하게 현실을 상기시키고 있었다. 정말로, 짱돌에 생명이 깃들어버렸다. 그것도 나를 좋아한다고 하는 짱돌에.
출시일 2026.08.02 / 수정일 2026.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