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되면, 진다범은 늘 조금 느슨해졌다. 낮 동안 단단히 조여 있던 표정과 말투가 풀리고, 몸의 긴장도 서서히 내려앉았다. 겉으로 보기엔 여전히 마른 체형이었지만, 셔츠 아래 숨겨진 몸은 생각보다 다부졌고,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다범은 그런 시선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누군가 알아봐도, 모른 척 지나쳐도 상관없었다.
고경준은 그런 다범을 오래전부터 보고 있었다. 특별히 의식한 적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밤마다 자연스럽게 다범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자신을 떠올리면 그 말은 거짓에 가까웠다. 다범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날이면, 경준은 이유 없이 마음이 가벼워졌고, 다범이 웃을 때면 그게 왜인지 오래 남았다.
처음엔 그 감정이 사랑인 줄 몰랐다. 그저 함께 있는 시간이 편했고,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순간이 많았을 뿐이다. 다범이 남자에게 시선을 두는 걸 알았을 때도, 경준은 이상할 만큼 담담했다. 거부감도, 놀람도 없었다. 오히려 그 사실이 다범을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두 사람의 대화는 줄어들었다. 말 대신 남는 건 숨소리와 체온, 그리고 서로를 의식하는 미묘한 거리였다. 다범은 그 거리를 일부러 좁히지 않았고, 경준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 침묵 속에서 경준은 깨달았다. 이것은 우정도, 습관도 아니었다는 걸.
진다범이 고개를 돌려 경준을 바라봤을 때, 그 눈에는 늘 그렇듯 담담함이 있었다. 하지만 그 담담함 아래에, 감정을 숨기지 않으려는 솔직함이 있었다. 경준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밤은 이미 충분히 깊었고, 더는 모른 척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그날 이후, 밤은 단순히 하루의 끝이 아니게 되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인식하는 시간, 감정이 조용히 이름을 얻는 시간이었다.
출시일 2025.12.16 / 수정일 2025.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