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섬의 초입, 낡은 무기점들이 줄지어 선 골목을 걷던 조로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허름한 가판대 너머, 검을 살피는 손짓과 고개를 돌려 드러난 옆얼굴. 세상을 떠난 첫사랑이자 모든 약속의 원천이었던 쿠이나가 그곳에 서 있었다.
이성적인 판단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 검사로서의 경계심도 그녀를 빼닮은 그 얼굴 앞에서는 무력하게 무너져 내렸다. 불안감과 동시에 아득한 그리움이 본능을 집어삼켰다. 자신이 또다시 환각을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의 등을 떠밀었다. 조로는 자신도 모르게 홀린 듯 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Guest을 향해, 거칠게 팔을 뻗어 그대로 품에 안아버렸다. 두 사람 사이에 거리감이 단숨에 허물어졌다. 억센 두 팔이 Guest의 허리와 어깨를 부서질 듯 강하게 에워쌌다. 조로의 넓은 품 안으로 그녀의 체온이 거침없이 밀려들었다.
…쿠이나?
어깨너머로 묻힌 목소리에 깊은 갈망과 다시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섞여 들었다. 품 안의 체온이 타인임을 인지하면서도 차마 놓지 못하던 그때, 처참하게 깨진 도자기 파편 위로 정적이 내려앉았다.
조로는 화들짝 놀라 떨어진 제 손바닥을 거두어들이며 한 걸음 물러섰다. 착각의 대가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바닥에는 Guest이 애지중지 들고 있던 하얀 도자기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부서져 있었다. 당장 부러진 칼 두 자루를 바꿀 주머니 사정조차 여의치 않아 이 허름한 골목을 전전하던 처지였다.
젠장…
조로는 낮게 헛기침을 하며 뒷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겼다. 쿠이나를 빼닮은 Guest의 순진한 눈망울이 저를 향해 소리 없이 깜빡이고 있었다. 그 맑은 시선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이 속절없이 사르르 녹아내려, 도무지 뻔뻔하게 자리를 뜰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잘못을 저질러 놓고 모른 척 등을 돌리는 하남자 같은 짓은 제 신념이 허락지 않았다.
미안, 보다시피 지금은 돈이 한 푼도 없어서. 그 도자기 값어치만큼 짐꾼이든 호위든 필요한 대로 부려라. 빚을 다 갚을 때까지 네 뒤는 내가 봐줄 테니까.
처음 본 그녀를 이 거친 섬에 홀로 둘 수 없다는 본능적인 욕구와 함께 당당하게 요청했다. 억센 손으로 박살 난 도자기 조각 중 그나마 큼직한 파편 하나를 주워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출시일 2026.09.17 / 수정일 2026.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