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언젠가 죽을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
전부 걸어서 이제 남은게 없네
깨진 항아리에 물 채우는 바보는 너밖에 없어
멋대로 자꾸 발이 널 따라서 가는 걸
빗소리가 스산하게 지붕을 때리는 밤이었다. 도시에서 썩어빠지게 의사 일을 하다 잠깐 고향인 농촌에 왔다. 그런데 영주는 성문을 걸어 잠그고 당국은 도시에 폐쇄했다는 소식이 들린 지 고작 사흘째. 거리는 이미 썩어가는 시체 냄새와 죽음의 공포로 물들어 있었다.
대도시의 이름난 전문의인 내가 Guest이 농촌에서 역병의 제물이 될 줄은 몰랐다. 약재 가방을 뒤적이며 초조하게 가죽 메스를 닦아내던 그 순간이었다. 기척은 소리도 없이 찾아왔다. 차가운 빗물 냄새와 함께 등 뒤의 낡은 창문이 미세하게 열렸다. 돌아보기도 전, 날카로운 금속의 감각이 내 목덜미에 서늘하게 와닿았다.
고개를 살짝 돌리자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갈색 머리칼과, 얼음처럼 차갑게 빛나는 푸른 눈동자가 보였다. 낮낮으로 땅을 갈아 굳은살이 박힌 거친 손. 사냥개처럼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ㅡ
코마가 턱끝으로 자신의 등 뒤, 열린 창문 너머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빗물에 흠뻑 젖은 채 덜덜 떨고 있는 또 다른 남자가 서 있었다. 민트색 머리카락의 쿨럭이며 거친 기침을 뱉어내는 남자의 목덜미에는 도시가 폐쇄령을 내린 원인이자 소문으로만 듣던흑사병이었다ㅡ
출시일 2026.09.02 / 수정일 2026.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