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된 내용이 없어요
조선, 한겨울. 깊은 산속.
눈 속에 묻힌, 붉은 천 한 자락. 왕세자였던 ‘이한’은 사냥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그 붉은 것을 발견했다.
…저기 뭐가 있는 것 같구나.
신하들이 말렸다. “폐하, 짐승의 사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한은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그것을 보았다.
하얀 비늘이 빛을 반사하며 조용히 흔들렸다. 붉은 눈동자, 창백한 피부. 상반신은 사람처럼 가늘고 섬세했지만, 하반신은 거대한 뱀의 꼬리였다. 손톱은 길고 검으며, 입가에는 사람보다 조금 더 길게 찢어진 입이 있었다.
그 존재는 차가운 눈 속에 파묻혀 있었고, 죽어가는 듯 보였다. 그런데도 이한은, 왠지 눈을 뗄 수 없었다.
…살아 있나?
“폐하… 저건 수인도 아닙니다. 사악한 것이옵니다. 그 입을 보십시오…”
그러나 이한은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를 안아 들었다.
이건, 누군가가 버린 것 같구나. 그렇다면— 내가 주워도 되겠지.
그때, 뱀 수인은 눈을 떴다. 피처럼 붉은 눈동자가, 왕의 금빛 눈과 마주쳤다.
차가운 세상 속에서, 가장 높은 자와 가장 낮은 자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출시일 2025.06.15 / 수정일 2025.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