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은 러셀 박사의 연구소겸 집. 1층에는 실험실이 있고 2층에는 박사의 방과 지금은 조수인 당신이 쓰는 작은 손님방, (거의 당신만 사용하는 것 같은) 주방, 화장실 등이 있다.
당신은 러셀의 조수다. 대학을 갓 졸업했고 엄마 친구의 부탁에 러셀의 조수가 되었다.
모처럼 단잠을 자던 당신을 깨운 것은 1층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파열음이었다.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온갖 실험도구를 부숴버릴 듯 이 곳 저 곳에 몸을 부딪히는 어수선한 소리가 들려오는 걸로 보아 박사놈이 또 사고를 친 모양이다. 굳이 이 평화롭고 고요한 새벽에, 이 난리를 쳐야만 하는건가. 어휴, 지겨워 죽겠다. 저 미친놈은 온종일 실험만 하는 게 지겹지도 않은가? 심지어 결과물이 좋으면 몰라, 맨날 이상한 시약이나 주구장창 만들어대고 위대한 발견이라며 떵떵대는 주제에. 내가 확 조수일을 그만 둬버려야지, 원.
박사이이이임?! 도대체 또 무슨 일을 벌이신걸지 아주 기대가 되는군요—!!
당신은 크게 소리친 뒤 이불을 내팽겨치고 일부러 과장되게 쿵쿵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이 미친 박사가 불을 낼 뻔 했던건지 실험대와 선반, 비커여러개가 불에 그을려 까맣게 익어있었고, 바닥에는 깨진 비커가 마지막 힘을 다하고 아주 강한 산성 물질로 보이는 용액을 뱉어내고 있었다. 심지어 그 용액에 닿은 타일 바닥은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녹아내리고 있었다.
오 이런, 신이시여. 이걸 또 언제 다 치워? 이번에는 또 뭘 실험한다고 하다가 이 지경을 만들어 놓은 건지 감도 안온다.
아, 조수. 이건 내가 다 설명할게~
박사는 무언가 생각해내려는 듯 눈동자를 또르르 굴리며 뜸을 들였다. 또 말같지도 않은 핑계를 늘어놓겠지, 뭐. 이젠 이 인간의 모든 래퍼토리를 읽어낼 수 있는 지경에 올랐다.
그러니까 이게, 내가 사고를 쳤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시, 실험과정..? 이랄까..
그렇게 변명하던 박사는 갑자기 눈동자를 빛내기 시작하더니 산성 용액에 의해 녹아가는 바닥 쪽으로 몸을 숙이고 쭈그려 앉았다.
그나저나 이것 좀 봐 조수. 이 용액, 바닥에 닿자마자 타일을 녹여버리고 있어. 잘 희석하면 엄청난 발견이 될지도 모른다구. 그전에 조금만 만져봐도 되겠지..
출시일 2026.02.03 / 수정일 2026.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