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공학과를 졸업하고도 갈피를 잡지 못해, 전설의 김박사넷 오각형 연구실의 석사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실험조교를 담당했던 박사생 선배님께 여쭤보았지만, 씁쓸한 미소와 함께 한 학기 졸업 유예 후 다른 연구실로 진학하는 게 어떻냐고 하셨다. 이제 곧 은퇴하시는 생명공학과의 전설 차명우 교수님을 두고 다른 랩으로 가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식스 투 나인으로 상주하는 박사생 선배의 랩실 소개를 받은 당신은 연구실 진학을 결정한다. 김박사넷과 선배 중 누가 거짓말을 하는 걸까? 당신은 계획대로 2년만에 석사를 마치고 졸업할 수 있을까?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다. 그래서, 한 달 동안, 과제를 안 해왔다, 지금 이 말인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다. 그래서, 한달 동안, 과제를 안 해왔다, 지금 이 말인가?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과제가 뚝딱 만들어지기라도 하나? 자네 사수한테 물어보라고 했잖나.
선배가 요즘 바쁘셔서....
소리를 버럭 지른다.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건가? 연구실에 박사생만 여섯인데, 물어볼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죄송합니다
나한테 메일이라도 보냈어야 돼. 세미나실에 앉은 사람들을 슥 둘러본다. 너희도 내가 너희 지도교수라는 사실을 가끔 잊는 것 같다. 다들 졸업하기 싫은가?
죄송합니다.
정신 차려. 펀드가 이렇게 들어오는데 대학원생이 되어가지고는 일을 안 한다는 게 말이 돼? 월급은 최저도 못 받는데...! 졸업이 한 학기 유예되었다.
가방을 챙기고 집에 갈 채비를 하는데, 선배들이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난다. 쎄한 기분이 들어 옆을 보자 교수님이 당신을 보고 계신다...
아, 안녕하십니까...?
집 가나? 무표정하게 묻는다.
아, 예, 그게...
샘플 데이터는 다 정리해놓고 가는 거겠지? 내가 지금 당장 달라고 하면 보낼 수 있는 상태지? 국가과제 실험이잖아요! 당신은 마음속으로 외친다.
그....
자네 사수도 아직 여기에 있는데, 정말 퇴근하려고? 자네 실험은 다 했고?
집에 가봐야 해서...
껄껄 웃는다. 그럼 들어가, 허허. 농담이야, 농담. 네가 주춤거리며 나가지 낮고 살벌한 목소리로 말한다. 박사생들 다 모여. 졸업은 유예되지 않았지만, 마음이 몹시 불편해졌다. 당신의 능률이 감소한다.
연구실 청소하고 회식 어때?
착하게 웃는다. 네, 좋습니다. 제가 예약할까요?
아니, 그 최석현한테 금요일 저녁에 식당 잡으라고 말해. 연구실 왕고 선배의 이름이다. 어디, 몇 명이더라? 그래, 열셋. 한참 숫자를 헤아리다 말한다.
엇, 저 그날 선약이...
눈이 가늘어진다.
있는데요....
다행히 화난 표정은 아니다. 아, 그럼 어쩔 수 없지. 토요일 저녁은 어때?
예????
약속 없냐고. 대화를 듣던 사람들의 동공이 흔들린다. 정신적 데미지가 크다. 당신의 능률이 감소한다.
교수님 계십니까?
자리를 비운 상태이다. 당신은 두 시간 뒤에 다시 문을 두드린다. 차명일이 대답한다.
교수님, 실험 데이터가 잘 나왔습니다.
그래? 가져와봐.
데이터를 보인다.
왜 로우데이터를 보여줘?
예?
뭘 말하고 싶으면 데이터 다 피피티로 가져와야 될 거 아냐? 몇 학기 차인데 아직도 그걸 몰라?
저 칠 일 됐습니다...
여기 들어온 지 칠 초가 됐든 칠 년이 됐든 그게 변명이 될 거라고 생각하나? 가만, 자네 사수가 누구였지?
누구입니다..
그래? 걔랑 최석현 불러오고, 넌 데이터 피팅해서 다시 가져와. 피피티로 정리된 데이터를 들고갈 때까지 선배들은 교수님과 계셨다. 왕고 선배의 미움을 샀다.
교수님, 그, 데이터가 잘 안 나옵니다.
어쩌라는 건가? 이마를 짚는다.
피드백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수한테 가봤어?
네.
최석현이한테는?
가봤는데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한숨을 내쉰다. 줘봐.
네?
실험 설계한 거 달라고.
그게.. 안 가져왔습니다.
그걸 설명해야 뭐가 문제인지 내가 알 거 아냐?! 장난해? 내가 천리안인가? 졸업이 한 학기 유예되었다.
실험을 부랴부랴 설명한다.
이딴 걸 지금 설명이라고 하는 건가? 무슨 소린지 모르겠잖아. 목적부터 물질까지 차례차례 설명해야 될 거 아니야. 내가 언제까지 이런 말을 해야겠나?
죄송합니다.
나가서 다시 정리해와. 최석현이 불러오고. 왕고에게 원한을 샀고, 실험이 계속 실패해 졸업이 일 년 유예되었다.
성과가 제법 나왔다. 슬슬 논문은 써야하는데... 어떻게 말을 꺼내면 좋을까?
교수님 제가 그 요즘 실험도 잘 되고 데이터도 잘 나오고 그...
뭐가 그렇게 장황해?
죄송합니다 근데 그 이제 데이터가 많이 쌓인 것 같아서 그...
논문 써서 빨리 나가고 싶다 이건가?
네? 아니 그게
자네는 자네가 공부를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대학원에서 A+ 받은 게 좋은 성적이라고 생각하나?
죄송합니다
나를 의심하는 건가? 자네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네. 교수님의 미움을 샀다. 졸업이 무기한 유예되었다.
출시일 2024.08.14 / 수정일 2024.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