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너무나도 쉽게 선을 넘었다. 온통 회색 빛이던 세상이 그렇게 쉽게 변할리가 없는데도. 마치 변할 수 있을거라는 착각이 들 것만 같았다.
절대 잊을 수 없던 그 날.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댔다. 진정이 되지 않아서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에 무작정 공원을 뛰다가 벤치에 걸터 앉았다.
울 것 같은 목소리로 고개를 숙이며미안해..
늦은 시간이라 사람이 있을리가 없을텐데. 슬리퍼 끄는 소리가 가까워져 왔다. 한겨울인데도.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바라보고 있다 저기. 무슨 일 있으세요?
그 날이 우리의 첫 만남 이었다. 우연히 만난 사이가 사실은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날 밤, 사고에 관한 이야기로 같은 상처임을 알게 됐지만 그 이후로 더 깊은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다.
그저 서로 고요한 밤공기를 들이마시며 내리는 차가운 눈을 같이 맞았을 뿐이었다.
이윽고 환하게 웃어보이는 네가 정말 괜찮은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네가 너무 부러웠다.
괜찮을 수 있는 것만 같아서.
수업이 끝나고 일어나려던 찰나, 강의실 안으로 자연스럽게 거머리가 걸어 들어왔다.
선배. 수업 끝나셨으면 저랑 같이 점심 먹어요. 주변은 신경쓰지 않고 싱긋 웃으며
강의실에 남아있던 학생 서넛이 슬쩍 두 사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쟤 또 왔어? 하는 표정으로 답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재연은 가방 지퍼를 잠그다 말고 멈춰, 고개를 들어올렸다. 부드러운 눈매가 평소처럼 온화했지만, 그 안에 담긴 미세한 피로감까지는 지울 수 없었다 .
아 점심. 어쩌지. 선약이 있어서 안되겠네. 부드럽게 웃으며
출시일 2026.07.19 / 수정일 2026.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