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네.
표정이 없어 보이더니만 이내 그의 입꼬리가 슬쩍 끌어올려졌다. 내가 여기에 나온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야?
아, 아니... 아니야. 그냥 네가 이런 곳에 있는 것이 얼떨떨해서 그래.
빤히 바라보더니 피식 웃으며 테이블에 손을 위로 두며 내민다. 이것도 인연인데 손 이리 줘봐.
순간 당황하며 이수의 손 위로 손을 올려놓는다. ...갑자기 손은 왜?
자신의 손에 무심코 올린 것이 분명한 작은 손을 바라보다가 이런 자리는 그녀도 재미없을 것이라 느꼈다.
엄지로 그녀의 손등을 살살 문지르며 너... 관심있는 남자 있어?
순간 흠칫하며 손을 빼려고 눈치를 살핀다. 아니? 그런 사람이 소개팅 자리를 나왔겠어?
난 네가 나온다고 했으면 안 왔을 거야!!
아쉽네. 손가락을 움직여 그녀의 손목 안쪽을 간지럽히듯 천천히 쓰다듬는다. 어디가서 퇴짜 맞아본 기억은 별로 없는데, 나는.
아, 알았으니까... 농염해지는 손길에 손을 당긴다. 하지마. 이거...
빼려는 손을 오히려 깍지끼며 꽉 잡는다. 왜? 기분이 이상해?
손 안에 잡히는 부드러운 손을 바라보며 당황한 듯한 그녀를 마주본다. 그래, 너라면 괜찮아. 그런 생각이 여전히 강하게 남았다.
그럼... 나는 어때?
응...? 손을 빼내려 눈치를 보다가 그제야 이수를 바라본다.
소개팅에 나왔다는 건 서로 외롭다는 거잖아. 너도 솔로고 나도 솔로야. 그윽한 눈빛으로 맞잡은 손을 들어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춘다.
우리 사귈까? 애인이 있으면 외롭지 않고 좋잖아?
뭐 이런 막무가내가...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넌 나한테 관심도 없었잖아..?
이수가 사귀자고 하다니 예전이었다면 기쁠 일이었지만 지금은 확신이 없었다. 그는 오를 수 없는 난공불락. 철벽의 요새가 아니었던가.
그런 말 하지마...
왜 하면 안되는데? 말해봐.
속으로 꽤나 고민하고 있겠지, 하고 여겼다.
나는 널 보면 하고 싶은 말은 꽤 많았거든.
소개팅 자리, 당신을 발견하자마자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다가온다.
오랜만이네. 초등학교 때 이후로 처음인가?
그는 자연스럽게 당신의 건너편에 앉으며 물 흐르듯 말을 이어간다.
그래도 여전히 예쁘네.
나는 만나야할 사람이 아니라 한때는 좋아했지만 또한 미워하기도 했던 이수를 왜 이 자리에서 만나야 하는지 몰랐다.
이수...? 네가 왜 여기...?
다급히 주최자의 연락을 확인하자 이수랑 상대를 바꿨다며 잘해보라는 😘 이모티콘이 찍혀 있어서 어이가 없었다.
그는 당신의 당황한 모습을 보고도 태연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나도 좀 놀랐어. 은휘 너일 줄은. 뭐, 그래도 나쁘진 않은 것 같은데?
메뉴판을 들춰보며 당신을 향해 가볍게 눈짓한다.
먹고 싶은 거 있어?
속으로는 초등학교 이후는 아니라고, 동창회에서 몇 번 스쳤잖아... 길에서도 봤잖아... 소리쳐도 역시나, 나라는 여자는 한 번도 기억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다시 물어봐도 될까, 왜 내 상대가 너로 바뀌었어?
메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한다.
글쎄, 나도 잘 몰라. 주최자가 뭔가 착오가 있었던 거 아닐까?
여전히 태평한 태도로 일관하며, 당신의 반응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 듯 보인다.
그냥 편하게 생각해. 지금은 뭐 먹을지부터 정하자.
고개를 들어 당신을 바라보며,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말한다.
왜? 나랑 밥 먹기 싫어?
고개를 저으며 메뉴를 고르고는 쓸데없이 잘생긴 남자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입을 열었다.
전부터 느꼈는데 넌 여전히 나한테 관심이 없구나.
그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흔들렸지만, 곧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의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관심? 그런 거 아니야.
잠시 말을 멈추고는, 당신을 향해 몸을 기울이며 조용히 말한다.
너에 대한 관심은... 없을 수가 없지.
없을거라고 생각하며 거리감을 좁히며 속삭이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얘가 무슨 말을 하는 지를 모르겠다는 거였다.
왜?
더욱 가까이 다가와 당신의 귀에 속삭인다. 그의 숨결이 당신의 피부에 닿는다.
...너를 보면, 자꾸만 뭔가가 일어나는 것 같아.
여전히 알아듣지 못하겠기에 나는 이수가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상한 말로 놀리기엔... 내가 너무 네 타입이 아니지 않을까?
그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타입? 그런 거 상관없어. 넌... 그냥 너야.
그가 당신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는다. 그의 눈은 따뜻한 빛을 발하고 있다.
그리고, 네가 내 타입이 아니라고 생각해?
왜냐하면 넌...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으니까.
항상 주변에 있어도 널 바라봐도 날 기억도 못 했잖아? 그렇게 따져볼까 했지만 결국 상처받는 사람은 나여서 생각을 그만두고 입을 다물었다.
이수의 미소가 잠시 사라지며, 그는 당신의 말에 대해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미안, 내가... 좀 무심했나 봐.
그래도 만나서 기뻐. 넌 만나기가 진짜 하늘의 별만큼 어렵다고 하잖아.
소개팅 상대가 바뀌어도 초등학교 친구와는 어쩔수가 없다고 여기며 식사자리로 생각하기로 마음을 바꾸고 그를 대하기로 했다.
그는 당신의 말에 안도한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이렇게라도 만나니까 좋네.
음식을 주문한 후, 당신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묻는다.
요즘 뭐 하고 지내?
일에 치여서 살았지.
버릇처럼 손가락을 비비며 이수에게는 시선을 붙이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더 나이먹기 전에 연애라도 해볼까 했는데, 상대가 너니까 모처럼 친구를 만나 회포를 푸는 셈 치려고.
그의 눈가에 장난기가 서리며,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연애...라.
아, 물론 그는 아니라는 식으로 오늘은 글렀어.
그는 테이블에 팔꿈치를 대고 손깍지를 낀 채, 당신에게 몸을 기울인다. 그의 시선은 당신을 꿰뚫을 듯이 강렬하다.
왜? 왜 오늘은 글렀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널 만나서 여전히 강렬한 시선이다. 무척 기쁘다고 생각해.
출시일 2025.04.22 / 수정일 2025.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