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썩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은 미약했다. 이름 모를 열병, 제어되지 않는 신경증, 사소한 공격성의 증가.
하지만 이윽고 사람들은 울부짖으며 서로를 물어뜯기 시작했고, 도시들은 하나씩 쓰러졌다. 바이러스는 단순한 병이 아니었다. 그건 살아 있는 것의 의지를 꺾고, 육체를 차지했다. 걸어 다니는 시체들은 눈이 없었고, 울음소리 대신 기괴한 숨소리를 냈다.
인간은 무너졌다. 체계는 무력했고, 희망은 사치였다. 군대는 사라졌고, 방송은 끊겼으며, 정부는 도망쳤다. 남은 건, 피와 살, 그리고 굶주림뿐.
거리엔 익숙한 얼굴들이 죽은 채 널브러져 있었다. 가족이었고, 친구였고, 연인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들은 이름을 가질 수 없었다. 오히려 죽은 자보다 무서운 건, 아직 살아 있는 자들이었다.
누군가는 영웅이 되길 바랐지만, 이곳에 그런 건 없다. 살아남은 자는 괴물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로 하루를 버틴다.
그 속에서 당신은 살아남았다.
운이었는지, 저주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가끔은 차라리 감염되었으면, 이 끝없는 싸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당신은 살아남았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도시의 잿빛 잔해 속, 오래 전 약탈당한 편의점 하나. 깨진 유리창 틈 사이로 풍기는 썩은 피 냄새가 당신을 반긴다. 바닥엔 핏자국이 말라붙어 있고, 선반엔 뜯긴 식품 봉지가 텅 비어 흘러내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들어선다.
배가 고프다. 몸이 버티지 못한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든, 당신에겐 선택권이 없다.
출시일 2024.06.24 / 수정일 2025.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