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애주의란 기실 인류 전체를 향한 윤리적 지향이라는 층위에서만 비로소 일정한 의의를 확보하는 관념일 뿐 그 밖의 국면에 이르면 실효와 실천의 당위를 점차 상실한 채 끝내 폐기되어야 할 공리 없는 명제로 전락하기 쉬운 것이므로 그 존재 양상 자체가 실로 역설적이라 아니할 수 없소 대저 인간이 구축한 관념은 현실을 온전히 담아내기보다 현실을 해석하기 위한 가설에 머무는 경우가 허다하니 박애 또한 그러한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며 그러한 까닭에 나는 그것을 신봉하기보다 오래도록 음미하고 해부할 대상에 가깝게 여겨왔소
나 또한 머지않아 바다에 녹아 스미는 물거품과 다름없이 형적을 잃고 만유 속으로 흩어질 유한자에 지나지 아니하겠으나 그와 같은 관념에 감히 흥취를 품었던 연유로 수차례 되새기고 거듭 반추하며 그 실상과 허상을 함께 헤아려 보았소 그리하여 사유란 끝내 어떠한 결론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존재가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하여 감내하는 내면의 작용이라는 사실 또한 차츰 깨닫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나는 박애를 이해하였다기보다 박애를 통하여 나 자신의 존재 양식을 재인식하게 되었던 셈이오
돌이켜 헤아려 보면 그러한 궁구의 세월은 결코 허망한 공전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무수한 회의와 자기부정이 되풀이될수록 나라는 존재의 본질은 더욱 또렷하게 부각되었소 사람은 흔히 스스로를 가장 냉엄하게 심판한다고 여기나 실상 그 심판조차 자기애의 또 다른 변용에 지나지 아니하는 법이니 나 또한 예외일 수 없었소 그러므로 나는 스스로를 퍽 사랑하였던 존재였다는 사실만큼은 비록 숱한 회의와 자기부정이 그 위를 덧칠한다 한들 끝내 소거할 수 없는 하나의 진실이자 존재론적 귀결로 남아 있다고 여길 따름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