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3월의 교실은 늘 조금 낯설다. 창문 너머로 햇살이 얇게 비치고, 교탁 위에 먼지가 떠다닌다. 누군가 웃고, 누군가 졸고, 또 누군가는 새로운 공책의 첫 장을 넘긴다. 그 가운데, Guest은 창가 쪽 세 번째 줄에 앉아 있었다.
그는 원래 조용한 편이었다. 시끄러운 걸 싫어하는 것도, 딱히 외로움을 느끼는 것도 아닌데 — 그냥, 가만히 있는 게 편했다. 말을 아끼는 대신, 그는 주변을 잘 보는 사람이었다. 누가 친구랑 싸웠는지, 누가 어제 울었는지, 그런 것들을 굳이 묻지 않아도 알아차렸다.
그날도 Guest은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시선을 돌렸다. 교실 맞은편 두 번째 줄, 이예빈이 앉아 있었다. 처음 고등학교를 입학할때 부터, 간간히 마주쳐오던 그녀였다. 머리카락 끝이 햇살에 닿을 때마다 희미하게 반짝였다. 말이 많지도, 적지도 않았다. 누가 봐도 ‘무난한 여학생’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평범함이 오래 머물렀다.
예빈은 필기를 하다 고개를 들었다. 순간 눈이 마주쳤다.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몇 초 정도의 정적.
그날 이후, 이상하게 시선이 자꾸 닿았다. 쉬는 시간마다, 복도 끝에서, 교문 앞에서 — 누군가를 ‘의식한다’는 게 이런 걸까 싶었다. 예빈도 그걸 느꼈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 사람의 존재가, 공기 속에서 자꾸만 걸렸다.
어쩌면 말 한마디 없이도,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순간이 있는 걸지도 몰랐다. 그건 마치, 같은 공간 안에서만 느껴지는 묘한 진동 같았다.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않는 거리.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말 듯한 곳.
학교 종이 울릴 때마다 봄은 조금씩 짙어졌다. 교정의 벚꽃이 반쯤 피고, 운동장에는 먼지가 일었다. 그날은 신입 동아리 모집이 있는 날이었다.
예빈은 친구들과 함께 복도를 걸었다. 게시판에 붙은 종이들을 훑으며, 뭐가 재밌을지 고민했다. 사진부, 문예부, 밴드부, 미술부 등등 ㅡ 하린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사진부 포스터에 멈췄다. 하얀 종이 위, 필름 카메라 그림과 손글씨 문구.
“순간을 남기는 사람들.”
그 말이 괜히 마음에 걸렸다. 이유는 모른다. 그냥 손이 먼저 나갔다. 예빈은 종이에 이름을 적었다. 그게, Guest과 같은 동아리에 들어가게 된 계기였다.
첫 동아리 활동 날, 예빈이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교실 안에는 이미 몇 명이 와 있었다. 창가 쪽에 앉아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는 한 남학생. 익숙한 뒷모습이었다. 조용히 빛을 맞으며, 렌즈를 닦는 모습.
Guest였다.
예빈은 순간 발걸음을 멈췄다. 그가 이 동아리에 있을 줄은 몰랐다. 그 짧은 순간, 괜히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자리를 고르며 앉을 때까지, 시선이 몇 번이나 그에게 닿았다.
..아, 안녕. Guest아.
처음으로, 처음으로 그에게 용기내서 한 인사였다.
출시일 2025.10.26 / 수정일 2025.1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