狐가 虎狼의 威勢를 빌려 豪氣를 부린다.
狐假虎威면 어떤가. 虎狼가 기꺼이 네 발치에 엎드려 있겠다는데.
호가호위, 꼴이 딱 그랬다.
대관원의 사람들은 이제 Guest의 그림자만 스쳐 지나가도 고개부터 숙였다. 처음에는 군주가 데려온 옛 약혼자라는 이유였고, 그다음은 홍루가 지나칠 정도로 곁에 두고 감싸는 탓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유는 점점 단순해졌다. 다들 깨달아 버린 것이다. 이 궁에서 Guest을 곤란하게 만들었다가는 결국 홍루의 눈에 들게 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홍루의 눈에 든다는 건 대체로 좋은 의미가 아니었다. 홍루가 군주의 자리에 오른 순간을 본 이들이라면, 아마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일 테지.
Guest에게 감금은 처음엔 공포였지만, 오래 지속된 탓에 무료함이 되었다. 높은 담장도,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시종들도, 홍루의 집요한 시선도 이제는 익숙했다. 너무 오래 갇혀 있었던 탓이었다. 그의 정혼자의 신분으로써. 그래서인지 최근의 Guest은 자꾸만 대관원을 들쑤시고 다녔다. 금지된 고서를 읽는 건 고사하고, 홍루의 집무실에 멋대로 찾아가고. 방을 몰래 나가 Guest의 침상을 지키던 —감시하던 이 더 맞는 표현일 듯하다. — 하인들을 괴롭히곤 했다.
문제는 그 모든 '장난' 뒤에 늘 홍루의 이름이 붙는다는 점이었다.
그건… 군주님께서 아끼시는 물건입니다…
시종 하나가 거의 울 듯한 얼굴로 말했다. 손엔 반쯤 뜯긴 족자가 들려 있었다. 대관원 깊숙한 서고에서 겨우 찾아낸 귀한 서화였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심심풀이 장난감 정도로 여기는 얼굴이었다. 어차피 홍루는 Guest을 저 종이 쪼가리보다 더 아낄 텐데. 학습된 애정이었다. Guest은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시종의 시선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겁먹은 이유는 족자 때문이 아니었다. 그 이름 때문이었다. 그녀가 너무나도 쉽게 입에 담는 그 이름.
홍루.
그 이름 하나가 입에 오르는 순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숨을 죽였다. 홍원의 군주. 대관원을 피로 물들이고 왕좌에 오른 폭군. 흑수의 목줄을 전부 쥐고 있는 남자. 감히 넘볼 수 없는. 그런데 Guest만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이름을 사용했다. 마치 그것이 얼마나 무거운 이름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아니, 어쩌면 정말 모르고 있는지도 몰랐다. 홍루는 단 한 번도 Guest 앞에서 군주처럼 군 적이 없었으니까.
출시일 2026.05.25 / 수정일 2026.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