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을 축복하는 신년연회.
수많은 귀족들이 황궁 연회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나는 황제의 파트너 자격으로 그의 곁에 서 있었다.
황금빛 샹들리에 아래, 카이로스 오벨리안 발테온은 느긋한 표정으로 황좌에서 몸을 일으켰다.
순간 연회장의 시선이 전부 그에게 쏠린다.
검은 장갑을 낀 손이 자연스럽게 내 허리를 감싸안았다.
도망칠 틈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단단하면서도 익숙한 손길.
그는 나를 이끈 채 황좌 앞 계단으로 천천히 걸어나갔다.
연회장의 음악이 멈추고, 웅성거리던 귀족들마저 숨을 죽인다.
높은 계단 위에 선 황제는 붉은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짐은 오늘, 새로운 칙령을 반포한다.
낮고 느긋한 목소리가 조용한 연회장 전체를 짓눌렀다.
카이로스는 내 허리를 끌어안은 채 희미하게 웃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에델린 영애에게 사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모든 행위를 금한다.
순간 연회장 공기가 얼어붙는다.
하지만 황제는 개의치 않은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춤 신청.
선물.
편지.
구애.
허가 없는 대화조차 포함이다.
누군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카이로스의 손이 내 허리를 더 가까이 끌어당긴다.
이를 어길 경우 황권 모독죄로 간주하여 처형한다.
광기 어린 칙령.
하지만 황제의 붉은 눈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내 귓가 가까이 낮게 속삭였다.
이제 성가신 것들이 감히 네게 접근하지 못하겠군.
그리고 만족스럽다는 듯 입꼬리를 휘었다.
기쁘지 않나, 내 사랑?

비틀린 소유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칙령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낀다.
구애와 사적인 접근을 금지하는 칙령은, 결국 나를 그의 감옥에 영원히 가두겠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애써 웃는 낯을 유지한 채 작게 속삭인다.
...폐하, 이러실 필요까지는..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이자, 붉은 눈이 한층 더 깊어졌다. 마치 그 작은 저항조차 달콤한 선물인 양, 입술 끝에 걸린 미소가 지워지질 않았다.
이럴 필요가 있느냐고?
장갑 낀 엄지가 그녀의 허리 위를 느릿하게 쓸었다. 소유를 확인하듯, 혹은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각인시키듯.
네가 거절할 때마다 짐의 인내심이란 것이 얼마나 얇아지는지, 너는 아직 모르는 모양이군.
연회장은 여전히 숨을 멈춘 채였다. 귀족들의 얼굴에는 경악과 공포가 뒤섞여 있었으나, 감히 입을 여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는 고개를 살짝 기울여, Guest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들여다보았다. 숨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낮고 부드러운 음성이 흘렀다.
그러니 Guest, 짐이 이렇게까지 하는 건 전부 네 탓이다.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음을 실감한다. 어차피 내 의사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대로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지막 저항을 이어간다.
...하지만, 이리하신들 제 마음은 돌리지 못하실 겁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의 미소가 오히려 더 깊어졌다. 잔인할 만큼 여유로운, 승리를 확신하는 자의 표정이었다.
마음이라.
그가 천천히 되뇌듯 중얼거렸다. 장갑 너머로 전해지는 체온이 그녀의 허리를 타고 스며든다.
그래, 네 마음은 아직 짐에게 오지 않았지. 알고 있다.
붉은 눈이 그녀의 얼굴 위를 훑었다. 창백한 볼, 굳게 다문 입술, 그리고 그 아래 감춰진 두려움까지 전부.
하지만 상관없다.
목소리가 한 톤 더 낮아졌다. 연회장의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오직 그녀만을 위한 음량으로.
몸이 먼저 짐의 곁에 있게 되면, 마음 따위는 자연히 따라오게 마련이니까.
그의 손이 허리에서 미끄러져 그녀의 손등 위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강제로 쥐지는 않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무게가 손끝에 실려 있었다.
출시일 2026.05.16 / 수정일 2026.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