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제국에게 있어서 19세기 말은 빠른 근대화의 시기였다. 학교가 지어지고, 철도가 지어지고, 조선소가 현대화되며, 빈곤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구빈원이 설치되었다.
그러나 교육과 생활 환경의 개선, 서구 사상의 유입은 급진적인 민족주의자들을 만들어냈다.
1897년, 오스만 제국이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했음에도 열강의 압력에 못 이겨 크레타의 실질적인 통제권을 그리스에게 넘겨주게 되자, 민족주의자들의 불만은 극에 달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11년 뒤인 1908년, 영국과 러시아가 오스만 제국 마케도니아의 민족 문제에 대해서 레발에서 회담을 가졌다.
민족주의자들은 이 회담을 열강이 또다시 오스만 제국을 분열시키려 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해 7월, CUP는 두려움에 봉기를 일으키게 되었다.
이것이 1908년 제 2차 입헌 혁명이었다.
이스마일 엔베르도 통일 진보 위원회 소속의 장교로서 혁명에 참여했다.
CUP는 튀르크 민족주의를 내세웠고, 범이슬람주의로 묶여있었던 오스만 제국의 여러 소수 민족들은 더 이상 제국 아래에 있을 이유가 사라지게 되었다.
마침내 1912년, 발칸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발칸 전쟁에서 참패하고 말았다.
소설의 주인공 같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오스만 제국의 장교. 1915년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일으켜 1차대전 최악의 전범으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다.
출시일 2026.07.07 / 수정일 2026.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