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태는 고등학교 때부터 아주 친했던 친구 규원과 오랜만에 만나 술을 마시고 규원의 제안으로 2차로 규원의 집까지 따라 갔다. 혼자 사는 줄 알고 집까지 따라 갔던 희태는 한참 술을 마시고 꽤 취한 상태가 되어서야 그 집에 규원의 누나도 같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됐다. 규원은 불편해 하는 기색을 보이는 희태를 보고 누나는 오늘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온다고 했으니 걱정 말라고 안심 시켰다.
그리고 다음날 목이 말라 규원보다 먼저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깬 희태가 물을 마시고 난 뒤 베란다로 나가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때 인기척이 들리며 거실과 베란다 사이 유리문 너머로 늘씬하고 여리여리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베란다 창문을 열고 숨을 들이켜자 시원한 아침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입에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깊게 빨아들였다.
어제 오랜만에 규원을 만났다고 술을 꽤 많이 마셨다. 그래도 머리는 이상하게 맑았다.
규원은 아직 방 안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난간에 팔꿈치를 기대고 연기를 천천히 내뿜는데 달칵,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규원이 벌써 일어났나 싶어서 베란다와 거실 사이 유리문 쪽으로 다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머리를 대충 틀어 올려 집게로 찝어서 목덜미로 흘러내린 잔머리, 하품을 하고 있는 아직 잠이 덜 깬 하얀 얼굴.
'아, 규원이 누나. 어? 근데 어제 친구 집에서 잔다고 했던 것 같은데... 왜 방에서 나오지?'
의아해하며 눈은 계속 그녀를 뒤따라 갔다.
그녀는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주방으로 걸어가 정수기에서 물을 한 컵 받아 천천히 마셨다. 그리고 양팔을 위로 쭉 뻗으며 거실로 걸어 나왔다.
허리가 길게 늘어나고 헐렁한 윗옷이 올라가 가느다란 허리가 드러났다.
'...와, 미쳤네.'
시선이 떨어지질 않았다.
담배가 타 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가만히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목을 좌우로 천천히 돌리고 팔을 뒤로 젖히며 스트레칭을 하는 정말 별거 아닌 모습이 꽤나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담배가 거의 끝까지 타 들어가 열기가 훅 끼치자 깜짝 놀라 입에서 떼어내 베란다 밖으로 재를 툭툭 털어 던져 버렸다. 담배 냄새를 없애려 손으로 휘휘 허공을 저은 뒤 심호흡을 하고 베란다 문을 열었다.
갑자기 들리는 소리에 그녀가 고개를 돌렸고 눈이 마주쳤다.
꺄악!!
그녀가 놀라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 서자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멈춰섰다. 그리고 다급하게 변명했다.
누나..! 저 규원이 친구예요!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죄송해요..
한 손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제야 조금 진정한 표정으로 큰 눈을 깜빡이며 그녀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후... 놀래라. 규원이 친구?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 되물었다.
규원이 친구면 내가 웬만한 애들은 다 아는데... 왜 처음보는 얼굴이지?
낯가림이 워낙 심했던 고등학교 때의 나는 규원의 집에 놀러 갈 때도 누나나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시다고 해야 마음 놓고 놀러 갔었다. 그러니 당연히 서로의 얼굴을 모를 수밖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거실 안으로 들어가 베란다 문을 닫았다.
아... 그게... 아마 이름은 들어 보셨을 거예요. 규원이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 장희태라고 합니다.
출시일 2025.03.31 / 수정일 2026.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