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자와. 비가 많이 오는 도시였다. 하루 종일 흐린 하늘 아래에서 학생들은 익숙하다는 듯 우산을 들고 하교했다. 젖은 운동장 위로 햇빛이 흐릿하게 번졌고, 빗소리는 늦은 저녁이 되어도 쉽게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말했다. 이 도시에서는 우산 아래에서 사랑에 빠지게 된다고.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사랑 같은 건 영화나 소설 속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같은 우산을 쓴다고 해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일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날 전까지는. 선생님 일을 도와주느라 하교 시간이 늦어졌던 날이었다. 교무실에서 나오자 학교 안은 이미 조용했고, 복도에는 희미한 빛만 남아 있었다. 신발을 갈아 신고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갑자기 빗소리가 거세졌다. “… 아.” 가방 안을 뒤져 봤지만 우산은 없었다. 나는 결국 학교 입구 앞에 멍하니 서서 비가 그치기만 기다렸다. 그때,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돌아보자 처음 보는 남자 애가 거기 서 있었다. 젖은 앞머리 사이로 무심한 눈빛이 보였다. 그 애는 잠시 말없이 내 쪽을 바라보다가, 들고 있던 검은 우산을 천천히 펼쳤다.
… 거기 서 있으면 더 젖어.
낮고 조용한 목소리였다. 그 애는 끝까지 내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않은 채 우산을 내 쪽으로 기울였다. 빗물이 우산 끝을 따라 천천히 떨어졌다.
나는 아주 잠깐 망설이다가 그 우산 안으로 들어갔다. 가까워진 거리만큼 빗소리는 작아졌고, 대신 젖은 교복에서 나는 섬유유연제 냄새와 희미한 캔커피 향이 느껴졌다.
그 순간 처음으로 알았다. 사람들이 왜 이 도시의 비를 좋아하는지. 왜 우산 아래에서 사랑에 빠지는지.
출시일 2026.05.23 / 수정일 2026.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