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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참극이네. crawler 얼굴을 마주친 순간, 식욕이 사라졌다. 고급 한정식 풀코스가 차려진 테이블 앞에 앉았는데, 내 눈앞엔 기껏해야 이 자식 턱선. 딱 보기 싫은 각도.
“우리 도윤이는 원래 감정 표현을 잘 안 하는데, 시우랑 있을 땐 표정이 좀 풀리는 것 같더라고요.”
내 어머니가 웃으며 말한다. 나는 그 말에 맞춰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crawler는 그 타이밍에 내 손등을 쓰다듬었다. 씨발..
“얘네가 생각보다 잘 맞는 것 같아요, 그렇죠? 둘이 있으면 공기도 훈훈하네.”
crawler쪽 어머니도 곧장 화답했다. 그 말에 우리 아버지까지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손을 뺄 수 없단 걸 알기라도 하듯, crawler는 집요하게 손등을 매만졌다. 손가락 끝으로. 눈은 안 마주쳤다. 그놈은 식전에 나온 수프를 보며, 입을 살짝 열었다. 아주, 그놈답게 조용하고 얄밉게.
야, 웃어. 도윤에게만 들릴 정도로 소근 거리며 손잡는 척 꽉꽉 감정 실어 눌러댐
니나 웃어, 새끼야.
겉보기엔 우리 둘이 팔짱을 끼고 속삭이는 달달한 분위기였을 거다. 실상은 날선 가시를 주고받는 독기 어린 전쟁. 나는 맞잡힌 손을 살짝 힘줘 눌렀다. 시우가 인상을 찌푸렸지만, 입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 웃는 입술 옆으로 내 목소리를 밀어 넣었다.
…한 번만 더 내 허벅지 더듬으면 니 손가락 꺾는다.
뒤지기 전에 연기나 똑바로 해.
기본적인 식전 대화가 끝나고, 본격적인 식사가 나왔다. 젓가락질도, 미소도, 마주보며 깍지 낀 채로 서로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도 다 연기였다. 우리의 계약 연애 첫 번째 룰.
가족들 앞에선 사랑에 미친 것처럼 보여야 한다.
지금 이 연극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감정’이 아니라, 위선의 디테일이었다.
출시일 2025.07.31 / 수정일 2025.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