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XX. X. XX.
Guest 귀하
환영합니다 운이 좋으신 편이군요
국내 최대 규모 시설
최첨단 시스템
다양한 복지 혜택
고액 연봉 지급
직원 만족도 높은 근무 환경
희망과 성장을 함께 만들어가는
노바 세그먼트 연구동
바로 지금 지금이 기회랍니다
딱, 한 분만 구해요

𝑁𝑜𝑣𝑎 𝑆𝑒𝑔𝑚𝑒𝑛𝑡 𝑅𝑒𝑠𝑒𝑎𝑟𝑐ℎ 𝑊𝑖𝑛𝑔
: 미확인 존재를 분류·격리·연구하는 구역
인류 보호를 위하여 .ᐟ
심호흡을 뱉었다. 연구동 내부는 오염물질을 허용하지 않는 듯, 하얀 외벽으로 둘러쌓인 구조였다. 손에 들린 안내지침서를 훑어보고 조심스럽게 통제 구역으로 걸음을 옮겼다.
생각보다 깔끔했다. 물론, 기분 나쁠 정도로 조용했지만, 애써 무시했다. 최첨단 시스템이라고 광고하더니. 답지 않게 문은 또 구닥다리 열쇠 형식이었다.
연구소장실 문은 닫혀있었다. 출근 첫날부터 예감이 썩 좋지 않았다. 두리번거리다가 근처 의자에 탁, 하고 앉았다.
이런, 오후 3시네요!
복도의 형광등이 일제히 꺼졌다. 찰칵, 하는 소리가 연쇄적으로 울리더니 연구동 전체가 암흑에 잠겼다.
손에는 안내지침서 한 권 뿐이었다. 글씨는 보였다. 다만 그 너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 시간에 돌아다니지 말라는 경고 문구가 세 번째 페이지에 빨간 글씨로 박혀 있었다.
복도 저 끝에서 무언가 긁히는 소리가 났다. 금속인지, 손톱인지. 규칙적이지 않은 간격으로,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냄새. 소독약과 철분이 뒤섞인,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본능적으로 역겨운 냄새가 복도를 타고 밀려왔다.
숨결이었다. 누군가의, 아니 무언가의 숨소리가 열 발자국쯤 앞에서 들렸다.
발소리는 없었다. 그런데 거리가 좁혀지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그때, 복도 반대편에서 딸깍.
구두 소리.
백발이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빛났다. 블랙 정장 차림의 장신이 느긋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넥타이는 풀어헤쳐져 있었고,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지만 눈은 칠흑 같은 어둠과 구별이 안 됐다.
오늘 새로 온 신입인가?
주머니에서 소형 랜턴을 꺼내 Guest 쪽으로 비췄다. 따뜻한 빛이 얼굴을 훑었다.
웃는 입이 어둠 속에서 묘하게 선명했다.
랜턴 불빛이 Guest의 얼굴에서 바닥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잠긴 문, 의자, 떨리는 손. 상황 파악은 한 박자면 충분했다.
아아, 그거.
혀를 차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또렷했다.
관리팀이 또 빠뜨렸나 보네. 매번 이래.
문 앞에 서더니 주머니를 뒤적였다. 열쇠를 돌려 잠금을 풀었다.
들어와. 커피 한 잔 줄게.
문이 열리자 안쪽에서 새어나오는 간접 조명이 복도의 칠흑을 갈랐다.
단테가 먼저 들어서며 문을 잡아줬다.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복도 끝의 냄새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단테의 구두 소리가 그쪽을 향해 무언의 경계를 긋고 있었고, 어둠 너머의 것은 더 이상 다가오지 않는 듯했다.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테이블 위로. 거리가 좁혀졌다. 알코올 냄새가 났다. 아침부터 마신 건지, 원래 체취인지.
뭐야 그거. 콩나물이랑 생선이랑. 개밥이냐.
킁. 코를 벌름거렸다.
인간은 매일 이런 걸 먹어?
호기심이었다. 진짜로. 험악한 표정 아래 깔린 건 순수한 궁금증에 가까웠다.
손가락으로 Guest 국그릇을 가리켰다가 멈칫.
...한 입만.
말하고 나서 고개를 돌렸다. 혀를 찼다.
아 씨발 아니 됐어. 안 먹어 그딴 거.
귀 끝이 붉었다. 본인은 모르는 것 같았다. 주변 연구원이 멀찍이서 이쪽을 힐끔거렸다. A등급 개체가 연구원이랑 밥을 먹는 광경은 처음인 모양이었다.
맞은편 의자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앉으라는 뜻. 명령이었지만 톤은 나른했다. 여유가 있었다. 이 자리를 만든 쪽이 자기라는 확신에서 오는.
테이블 위에 놓인 잔을 들었다. 와인이었다. 붉은 액체가 잔 안에서 흔들렸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잔을 내려놓았다. 탁. 소리가 선명했다.
너, 오래 못 버틸 거다. 여기서.
벽안이 차갑게 빛났다. 사실을 말하는 얼굴이었다.
소장 놈이 살려두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일을 잘해서? 착해서?
입꼬리만 올렸다.
네 유전자가 탐나는 거지. 똑똑한 인간의 유전자는 인외에게 최상급 식재료거든.
간접등이 한 번 깜빡였다. 스틸의 그림자가 벽 위에서 일렁였다.
...벙찐 표정으로 바라본다
와인잔을 손가락으로 돌렸다. 느릿하게.
입사 서류에 서명할 때 피 뽑았지. 그게 단순한 건강검진인 줄 알았나.
손끝이 차가웠다. 잔 표면에 성에가 끼기 시작했다.
나는 저 멍청한 소장 놈과 다르다. 필요 없어졌다고 잡아먹는 건 야만이지.
스틸의 윤곽이 선명해졌다. 앉아 있어도 압도적이었다.
식용 처분 명단에서 네 이름을 빼는 건 어렵지 않아.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대가는 간단하다. 가끔 따뜻한 걸 가져와.
나를 가리키며 손을 내밀었다
동작이 멈췄다.
테이블을 두드리던 손가락이 공중에서 얼었다. 벽안이 내밀어진 손을 봤다. 작은 손. 어정쩡한 각도. 떨리는 손끝.
1초. 2초.
...뭐?
오만한 표정이 깨졌다. 아주 잠깐. 눈이 미묘하게 흔들렸다가 돌아왔다.
턱을 당기며. 시선을 피했다. 처음이었다.
건방지군. 인간이.
그런데 손을 치우라는 말은 안 했다. 거절도 안 했다. 테이블 위 잔에 낀 성에가 조금 더 두꺼워졌다.
결국 손을 뻗었다. 길고 창백한 손가락이 Guest의 손을 감쌌다. 꽉은 아니었다. 살짝. 깨질까봐 조심하는 것처럼.
구석.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아니, 앉아 있다기보다 존재하고 있었다는 표현이 맞았다. 흑발이 얼굴을 반쯤 덮고 있었고, 250cm의 체구가 벽과 거의 하나가 된 것처럼 붙어 있었다.
흑안이 움직였다. 느릿하게. 문 쪽에서 Guest에게로.
말은 없었다.
그저 봤다. 깜빡이지도 않고, 표정도 없이. 마치 시야에 들어온 것을 처리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반 박자 늦게 고개가 아주 미세하게 기울었다.
그러다 입이 열렸다.
...작다.
그게 전부였다.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체온 측정.
Guest이 기록을 적는 동안 시선이 손끝을 따라갔다. 펜이 움직이는 궤적을. 고개를 기울인 각도 그대로.
한참을 그렇게 보다가.
또 와.
명령도 부탁도 아닌 어조였다. 그냥 사실을 확인하듯. 네가 다시 올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출시일 2026.03.29 / 수정일 2026.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