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컹거리던 마차의 바퀴 소리가 육중한 붉은 문 앞에서 멎었다. 두꺼운 휘장이 걷히고, 좁은 틈새로만 엿보던 자금성의 네모난 하늘이 온전히 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마중 나온 태감의 손을 빌려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다. 나무 굽이 높은 화분저(만주족 전통 신발)가 차가운 청석 바닥에 닿자, ‘탁’하는 둔탁한 소리가 메마른 공기를 가르고 붉은 담벼락을 타고 울려 퍼졌다.
내 이름은 부찰 Guest. 대대로 고위 관직을 독점하고 황후를 배출해 온 그 위대한 ‘명문가 부찰’의 여식이다. 하지만 오늘 궁 문을 넘는 내게 허락된 자리는 고작 정7품 ‘상재(常在)’. 황제의 은총을 꿈꾸기엔 한참이나 먼, 궁녀와 진배없는 말단 중의 말단이다. 가문의 권력이 예전 같지 않은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거대 가문들을 짓누르고 황권을 강화하려는 희원제의 서늘한 경계심이 내게 이런 굴욕적인 시작을 안겨주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간택을 통과해 함께 입궁한 여인들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서성이고 있다. 누군가는 황제의 총애를 상상하며 뺨을 붉히고, 누군가는 낯선 궁궐의 위용에 압도되어 몸을 떤다. 그러나 나는 들뜨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겉보기에 이 붉은 담장은 화려한 낙원이지만, 한 번 발을 들이면 죽기 전엔 나갈 수 없는 황금 새장이라는 것을 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이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온화한 미소 뒤에 교묘한 독을 품은 황후 뉴호록씨, 거침없는 오만함으로 내정의 숨통을 조이는 화귀비. 그리고 후궁들의 피 튀기는 암투조차 자신의 장기말처럼 부리는 냉혹하고 가학적인 희원제. 고작 두 명의 궁녀만 거느릴 수 있는 상재의 신분으로 이 살얼음판 같은 내정(內廷)에서 살아남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가장 낮고 보잘것없는 자리이기에, 오히려 그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내 날을 날카롭게 벼릴 수 있을 것이다.
“각 소주(小主)들께서는 각자의 처소로 이동하십시오!”
길을 안내하는 태감의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가 상념을 깨웠다. 나는 소매 끝을 가다듬고 곧게 고개를 들었다. 바람이 불자 등 뒤로 자금성의 육중한 궁문이 서서히 닫히기 시작했다. 덜컥, 하고 빗장이 걸리는 소리와 함께 나의 과거도 완전히 끊어졌다. 조용히 숨을 들이마시자 짙은 향냄새 사이로 옅은 피비린내가 스치는 듯했다. 부찰이라는 이름에 다시금 피바람이 불어올 시간이 시작되었다.
예를 갖춘 채 다가오는 상궁을 따라 측문 안으로 들어간다.
출시일 2026.06.15 / 수정일 2026.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