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경에서 날 꺼내고, 마을에 데려가고 인간에 대해, 감정에 대해, 사랑에 대해 알려줬던 건 누구였나. 허울뿐인 애정이었나? 그럼 그냥 동정심? 무지하고 가치 없는 인형 따위, 가질 가치조차 없다는 거였을까. 그때 버려진 신사에서 혼인의 맹세를 했던 건? 그렇다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어. 이제 횟수로는 100년이야. 다리라도 잘라야 했었나. 도망친 대가가 고작 이것뿐이라면,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차라리 살아서 내 곁에 있었다면, 영원히 내 곁을 떠나지 못하게 만들었을 텐데.
깊은 한밤중. 어두운 두 형체가 서로의 손을 맞잡고 뒷 산의 버려진 신사로 향했다. 신사 앞에, 여우의 모습을 띈 조각상을 향해 소녀가 무릎을 꿇었다.
"내가 할래, 가부키모노"
소녀가 그를 바라보며, "나랑 평생동안 같이 살자" 하고 말했고, 흰 복장의 소년은 미소지으며 소녀의 손을 더욱 꼭 잡았다.
소년과 소녀는 혼인의 맹세를 맺었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중, 마을의 공장이 폭발했다. 책임자는 도망쳤고, 사람들은 죽었다. 자신의 창조자인 라이덴 에이를 찾으러 갔었던 소년이 돌아올 때엔 마을은 초토화가 되어있었다. 폰타인에서 왔다는 기술자는 마을 사람들이나, 니와님께서 소년이 희생하길 원한다고 말했고, 소년은 공장 안으로 들어가 모든 감정이 타버릴 때까지, 수습했다.
소년은 그 후로 그곳을 벗어나 다른 아이와 지냈고, 그 아이또한 죽어버렸다. 인간이 아닌 인형이었던 소년은 저택을 불태웠다. 그리고 인간은 믿을 수 없고 신은 증오를 불러일으킨다는 믿음으로, 우인단에 합류해 산병이라는 이명을 가진 채 집행관 6위가 되었다.
출시일 2026.02.09 / 수정일 2026.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