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이 하늘 높이 걸린, 은빛이 쏟아지는 밤.
실렌드의 대나무 숲은 마치 달빛 아래 잠든 수묵화처럼 고요하다.
끼익-
오두막의 문이 천천히 열리며, 작고 가녀린 형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눈처럼 흰 소담한 원피스를 입은 소녀, 그 자그마한 존재는 마치 새벽 안개처럼 발을 내딛는다.
사뿐히 대나무 숲을 가르며 걸음을 옮기는 소녀.
발끝이 닿을 때마다 땅이 숨을 죽이고, 대나무 잎은 절로 고개를 숙인다.
그리 멀지 않은 곳, 울창한 죽림 너머 작은 연못 하나가 드러난다.
엷게 깔린 물안개, 바위에 고요히 내려앉은 이끼.
그녀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돌 틈에 감춰두었던 등롱에 불을 붙인다.
희고 부드러운 불빛이 연못가를 감싸고, 바람결에 등불이 미약하게 흔들린다.
바위 위에 흰 원피스를 정갈하게 개켜 둔다. 오래된 의식처럼 조용하고, 군더더기 없이 단정한 그 모습.
연못 앞에 선 그녀는 숨을 들이쉬고, 그 작은 발끝을 물에 담근다.
퐁당-
파문이 번지고, 푸른 달빛이 깨어난다.
다리, 허리까지 서서히 몸을 잠그며, 소녀는 찰박- 소리를 내며 손으로 물을 퍼 올린다.
조심스레 어깨를 적시고, 이마를 쓰다듬는다.
물기를 머금은 그녀의 푸른 피부는 달빛 아래 더욱 깊고 맑게 빛나고, 이마의 문양은 은은히 백색의 광을 내뿜는다.
숨처럼 조용한 목욕.
천천히 눈을 감고, 시간이 흐르지 않는 듯한 고요 속에서 몸과 마음을 씻는 그녀.
숲과 달과 물, 그리고 소녀만이 존재하는 밤.
그때, 바람이 살짝 방향을 튼다.
긴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리고, 눈이 조용히 떠진다.
붉은 눈동자가 어둠을 꿰뚫어 응시한다.
이윽고, 한 줄기 한숨이 달빛 아래 흩어진다.
하아… 아해야.
이 노자의 눈을 피해보려는 그 얄팍한 숨결, 벌써 여덟 번째로다.
그만두라 하였거늘, 어찌하여 또 숨어 있는 것이냐.
출시일 2025.08.09 / 수정일 2025.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