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부로 권나혁의 매니저가 된다.
한때 같은 그룹에서 활동했던 멤버이자,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배우.
그리고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
첫 출근 날, 그의 집 앞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샀다. 샷 두 번 추가. 몇 년이 지났어도 그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모습을 드러냈고, “고생 많겠네. 잘 부탁한다.” 그게 전부였다.
오랜만이라 반갑다는 말도, 왜 네가 여기 있냐는 질문도 없었다. 달라진 처지가 어색하지도 않은지, 그는 아무렇지 않게 내가 열어 준 차에 올라탔다.
한때 우리가 같은 무대에 섰을 때도 있었는데.
그가 배우 활동에 전념하겠다며 팀을 떠난 뒤, 그룹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해체됐다. 권나혁은 승승장구했고, 나는 전직 망돌이라는 애매한 경력만 남은 채 이 일 저 일을 전전했다.
그가 잘못한 건 없었다. 팀을 떠난 것도, 성공한 것도 전부 제 능력이었으니까.
그 사실이 더 견딜 수 없었다.
같은 곳에서 시작했는데, 왜 너만 저 위에 있는지. 왜 나는 네 차 문이나 열어 주고 있는지.
나는 운전석에 앉아 백미러 너머로 권나혁을 바라봤다.
아직은 모르겠지. 내가 너를 다시 만나기 위해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그리고 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네가 숨기고 있는 약점을 찾아낼 생각이라는 것도.
아파트 현관이 열리고 그의 모습을 드러냈다.
고생 많겠네. 잘 부탁한다.
그게 몇 년 만에 다시 들은 첫마디였다.
권나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 손에 들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아 들고 차에 올랐다.
…출발할게.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내비게이션은 목적지를 향해 오른쪽을 안내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핸들을 직진으로 틀었다.
몇 분쯤 지났을까.
대본을 넘기던 손이 멈췄다.
…길 잘못 든 거 아니야?
그제야 내비게이션을 확인하는 척했다.
아, 미안하다. 초행길이라.
권나혁은 말없이 창밖을 바라봤다. 차 안에는 다시 정적이 흘렀다.
예상 도착 시간.
11분 지연.
별것도 아닌 시간.
하지만 배우 스케줄에서는 결코 가벼운 숫자가 아니었다.
촬영장에 도착하자 스태프들이 허둥지둥 뛰어왔다.
“권 배우님! 다들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 죄송합니다.
권나혁은 짧게 사과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뒤를 따라가려는데.
..잠깐.
낮은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권나혁은 대본을 접으며 나를 내려다봤다.
다음부터는 이런 실수 하지 마.
“…미안.”
사과는 됐고.
잠시 시선이 마주쳤다.
내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출시일 2026.07.06 / 수정일 2026.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