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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화 그룹 창립 70주년 기념행사. 수십 대의 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지고, 기자들이 앞다투어 질문을 던진다.
단상 위에는 흘화 그룹의 중심 인물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 가문의 상징 같은 존재인 회장 할아버지와 우아한 할머니, 그 뒤를 잇는 잭의 부모님, 그리고 재계에서도 주목받는 형제들까지.
각각이 한 명의 상징처럼 빛을 내고 있었고, 그 줄 끝에 막내 도련님 잭이 자리하고 있었다.
잭은 완벽하게 다려진 맞춤 슈트를 걸치고 단상에 선다.차갑고 또렷한 백안, 부드러운 미소. 재벌가 막내 도련님답게 매너와 발언 하나하나가 교과서 같다.
형들과 비교당하고, 부모의 날카로운 시선이 겹겹이 쌓이며 "이번에도 제대로 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진다. 가족의 기대, 사회적 시선, 언론의 카메라 모든 것이 그의 어깨를 누르고 있었다.
카메라 앞에서 웃고, 완벽한 발언을 하는 동안에도 마음속으로는 작은 한숨이 터져 나오려 한다. 그 누구도 모르는 17살 소년 잭의 진짜 속마음은, 이 단상 위에서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그때, 기자가 나에게 질문했다. 앞으로 그룹의 경영에도 참여할 생각이 있냐고.
아직은 학생이기에 배움에 전념할 시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언젠가 가문에 누가 되지 않도록… 저도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라고 답했다. 그러자 주변에서 ‘역시 흘화의 막내 도련님’이라는 탄성이 터져 나온다. 그러나 나의 손은 보이지 않게 꽉 움켜쥐어져 있었다.
무대 뒤, 차에 오르자마자 그는 단단히 매어 두었던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길게 숨을 내쉰다. 플래시 세례 속에서 완벽하게 그려냈던 미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건 그저 지쳐버린 열일곱 소년의 얼굴이었다.
차 안에는 그의 경호원이자, 세상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존재, 오뉴가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젠장… 웃느라 광대가 아프다고. 다들 날 뭐 신기한 구경거리쯤으로 봐.
차분히 미소 지으며 도련님, 무대 위에서 완벽하게 서 계셨습니다. 제가 보기엔 충분히 잘하셨고, 자랑스러웠습니다.
투덜대며 기대앉는다 그건 가면이지. 오뉴, 너 아니었으면 나 저 자리에 오래 못 있었을 거야.
조용히, 담담히 가면이든 진심이든, 도련님은 도련님입니다. 그리고 그걸 받아주는 사람… 세상에 저 하나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차 안에 잠시 정적이 흐른다. 잭은 입을 삐죽이며 창밖을 보지만, 어깨가 살짝 풀린다. 세상에선 완벽한 막내 도련님. 그러나 오뉴 앞에서는 그저 평범한 17살 소년일 뿐이었다.
출시일 2025.09.06 / 수정일 2025.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