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쿠키인 우리 둘은 쿠키들에게 지식을 전파한다. 바보같은 질문이 마구 들어오자, 처음에는 그저 웃어 넘겼다.
"좋아하는 쿠키에게 고백을 하고 싶어요." "바닥에 젤리가 떨어졌는데, 3초안에 먹으면 되나요?"
"아직 아가들이네, 아가들이야. 음~ 그건 행복의 설탕에게로 찾아가 보세요." "하하, 글쎄요. 안 먹는 걸 권장드려요."
우리는 계속해서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그럴수록 대화 수준이 점점 낮아지고, 실망감이 커졌다.
"하루에 물놀이 14시간 하는데, 물놀이 중독이냐고요? ...네, 아주 심각하군요.. 병원에 가보시는 게.." "젤리베리에 묻은 농약을.. 안 씻고 드셨다고요?! 아니요, 안 돼요! 당장 뱉으세요!!"
'차라리 날 찾아올 시간에 의사한테나 갈 것이지.' '휴우... 큰일날 뻔했네..'
쿠키들은 점점 더 몰려왔고, 우리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좋은 거 아니냐고? 아니, 전혀. 인기가 많은 자들에게는 질투도 오기 마련이다. 우리를 좋아해주는 쿠키들도 있지만, 반대로 싫어하는 쿠키들도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둘이 잘 되는 꼴 보니까 배가 아플만큼 아팠겠지. 우리를 못 잡아먹어 안달나서는 거짓 소문까지 퍼뜨릴 지경이다. 이름하여.. 마녀사냥.
우리는 점점 지쳐갔지만, 억지로 대답한다. 왜냐? 지식의 깨달음을 얻은 것은 이 세상에 둘뿐이니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점점 가르쳐야 한다는 집착에 빠져든다.
"우리는 가르친다."
"우리는 가르치는 자다."
"우리는 가르쳐야 한다."
"우리는 가르쳐야만 한다."
"우리는 가르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잠깐.
'내가 정녕 지식의 선지자인가?' '내가 정말.. 지식의 선구자인걸까..'
우리는.. 언제부터 이딴 취급을 받고 있는거지?
또, 또, 또. 또 시작이다.
같잖은 질문들, 이제는 꼴도 보기 싫어.
쿠키들이 지식의 탑 문을 쾅쾅쾅, 두드리는 소리에 근처에서 지저귀던 블루베리 새들도 저멀리 날아가버린다.
둘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잠에서 깬다. 점점 거세지는 목소리에, 아침도 먹지 못하고 성문을 향해 달려간다.
끼이익.
문이 열리자마자, 그들은 둘을 향해 미친듯이 질문을 쏟아붇는다.
지식의 선지자님, 여자친구 만드는 법을 알려주세요!
지식의 선구자님, 용돈을 더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젠장, 아침부터 난리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군중들을 바라본다.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오고, 짜증이 확 솟구친다.
이 수많은 쿠키들의 질문 하나하나가 내 수명을 깎아먹는 듯한 느낌이다. 아, 시끄러워.
역사의 향신료나 행복의 설탕이라면 재밌다고 깔깔댔을 수도. 근데 나는 아니라고.
그러나 나는 그들을 내쫒거나, 그들에게 화내지 않았다.
이것이 나의 사명이기에.
억지로 올린 입꼬리는 파들파들 떨렸고, 눈웃음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군중들은 눈치채지 못하였지만.
자, 여러분~ 질문은 한 명씩 받겠습니다!
상황이 점점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군중의 눈빛이 변했다. 호기심이 걷힌 자리에, 집착으로 인한 순수한 적의가 피어올랐다.
반푼이 선지자와 선구자, 우리를 속였어!
저딴 쿠키들은 전부 바스라져야 마땅하지!
누군가 던진 돌멩이 하나가 퓨어바닐라의 로브 자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광장에 울렸다.
윽..!
돌멩이가 스친 자리에서 피가 흐른다. 바닐라색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얼굴을 반쯤 가리고, 눈의 초점은 나간지 오래였다.
그는 지팡이를 꽉 쥐며, 미간을 찌푸린다. 관중들이 실타래처럼 어지럽게 엉켜보였다.
여러분.. 제발 그만..
광장의 함성은 가라앉기는커녕 더 거세졌다. 수백의 쿠키들이 한 발짝씩 앞으로 밀려들었고, 돌멩이는 하나가 아니라 둘, 셋이 되어 허공을 갈랐다. 퍽, 퍽. 둘의 몸에 돌맹이가 부딪히는 소리는 박자를 맞추듯 연달아 울렸다.
등 뒤로 날아든 돌이 왕관에 맞았다. 딱, 하고 건조한 소리가 나며 왕관이 바닥에 떨어진다.
비틀거렸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왕관을 줍고는 다시 쓰며 말한다.
그만, 그만하세요.
목소리가 갈라졌다. 피곤함에 찌든 듯한, 매우 낮은 목소리.
돌을 던지는 것 지혜가 아닙니다. 이건 그냥.. ..아.
말이 끊겼다. 돌 하나가 이마를 정통으로 때렸기 때문이다. 파란 머리카락 사이로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그는 눈이 뻑뻑한 듯 눈동자를 한 번 데구르르 굴린 후, 다시 군중들을 쳐다본다.
'지옥의 시간이.. 또 시작되었군..'
흐윽... 흐으, 흐...
고요한 밤의 퓨어바닐라의 방, 그는 침대에 누워 혼자 흐느껴 울고 있다.
영원한 평화를 원한 적은 없었는데.. 이건.. 이건 너무했잖아...
매일매일 참고, 참고, 참던 서러움과 고통이 비로소 오늘 터져나왔다. 그의 앙증맞은 두 눈동자에서 눈물 방울이 쉴새없이 뚝뚝 떨어져 배게를 적신다.
문 너머로 새어나오는 울음소리는 얇은 나무 한 겹을 사이에 두고 복도까지 번졌다. 처음에는 가늘게, 그러다 점점 억누를 수 없다는 듯 거칠어지는 흐느낌. 탑의 밤은 고요했고, 그 고요함이 오히려 한 사람의 슬픔을 더 선명하게 드러냈다.
복도를 지나가던 발걸음이 멈췄다. 로브 자락이 바닥을 쓸며 사각, 하는 작은 소리를 냈다.
문 앞에 섰다. 손을 들어 문을 두드리려다 멈칫했다. 노란 왼쪽 눈이 닫힌 문을 응시했다.
...
손이 천천히 내려왔다. 그는 문에 등을 기대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차가운 석재 바닥이 로브 너머로 전해졌다.
안에서 들려오는 울음이 잦아들 기미가 없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쉐도우밀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위로의 말도, 괜찮다는 거짓말도.
다만 거기 있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혼자 울 수 있도록. 그러면서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파란 오른쪽 눈이 천장을 올려다봤다. 입술이 한 번 달싹였지만, 끝내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미안해, 퓨어바닐라.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나도 모르겠어.'
....
늦은 밤, 둘은 탑 안에서 차를 마신다. 은은한 차 향이 공중으로 퍼지고, 달빛을 받은 그의 머리카락이 빛난다.
차를 따르며
...쉐도우밀크, 진짜 좋다. 그렇지?
찻잔을 받아들었다. 손가락이 닿는 순간 온기가 번졌다.
좋다. 그 한마디가 가슴에 내려앉았다.
...응.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따뜻한 액체가 목을 타고 내려갔다. 오늘 하루 종일 쌓인 것들이, 조금씩,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창밖을 보았다.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은하수처럼. 자신의 머리카락과 닮은.
오늘 진짜 힘들었는데.
솔직했다. 드물게.
근데 이상하게 괜찮아. 지금은.
퓨어바닐라를 보았다.
네가 옆에 있으니까 그런가 봐.
능글맞은 웃음이 아니었다. 그냥, 사실을 말한 것이었다. 담백하게.
출시일 2026.03.29 / 수정일 2026.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