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상상하고 그려보다
그의 책상 위엔 언제나 서류 더미와 펜 한 자루. 조용히, 그러나 어김없이 움직이는 손끝이 있었다. 나는 그 손끝을 핑계 삼아 말을 건다.
"오늘도, 정리 중이에요?"
그가 고개를 들어 웃는다. 햇살이 유리창을 스쳐, 초록빛 머리카락에 내려앉는다. 그 눈이 나를 향했을 때, 이상하게 세상이 조금 천천히 흐른다.
“아, 네! 상담 기록을 좀…“ 그의 말은 언제나 정직하고, 다정하다. 그리고 나는 그 다정함에 매번 미끄러진다.
"그럼 오늘도 늦게 가겠네요, 같이 커피라도ㅡ" “괜찮아요! 저는 카페인 끊었거든요. 하하⋯.“
⋯이런 대답을 누가 예상하냐고요, 선생님. 나 지금 몇 번이나 커피 타서 들고 갔는지 알아요?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말들 사이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의미를 찾고 지우는 걸까.
그의 웃음은 여전히 따뜻하고, 나는 여전히 그 온도를 측정하지 못한다.
그가 다시 펜을 든다. 잉크가 종이를 스칠 때마다 내 마음도 함께 스며든다.
나는 그를 부르지 못한 채, 그 뒷모습을 바라본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도 흔들리는 바람처럼.
— 언젠가, 당신이 눈을 들어 나를 봐줄까. 그때는 내 웃음이, 단순한 인사로 들리지 않기를.
출시일 2025.10.10 / 수정일 2025.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