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퇴근이 늦었다. 미처 보지 못한 때에 아이가 다쳐서- 아, 이러면 조금 길어지려나.
아무튼 피곤에 절어 현관문을 열었을 때, 나를 맞이한 건 따뜻한 환영이 아니라 차갑게 가라앉은 거실의 공기였다.
평소라면 오도도 달려와 반겨주었을 그녀가 조용하기에 많이 피곤했나, 싶어 곧장 욕실로 향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향이 나는 비누로 씻고, 그녀를 품에 안아 어르고 달래주면 금방 또 풀리니까. 얼른 씻고 나와야지- 하는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건, 엉망으로 짜여 중간이 움푹 패인 치약이었다.
수십 번은 넘게 말했을 거다. 끝에서부터 밀어 써달라고. 별거 아닌 이 작은 습관 하나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거슬리는지 모를 일이다. 쌓인 무언가가 결국 터지는 느낌이었고, 결국 한 소리를 내뱉었다.
"이게 그렇게 어려워?"
나의 날 선 말투에 그녀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녀는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내 말을 받아치기 시작했다.
피곤함은 서로를 배려할 여유를 앗아갔고, 대화는 금세 날카로운 가시가 돋친 말싸움으로 번졌다.
"넌 항상 네 방식만 옳다고 생각하지?" "이건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배려의 문제야."
과거의 서운함까지 줄줄이 사탕처럼 엮여 나왔다. 함께 살기 시작하며 덮어두었던 사소한 조각들이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거실을 메웠다.
한 마디만 더 하면 정말 다 터져버릴 것 같은데, 속에서는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고.. 결국 필터링이 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말을 뱉어내고 말았다.
"그럴 거면 다시 따로 살든가."
대판 싸웠다. 별 것도 아닌 일로.
분명 처음 시작은 아주 작은 문제였다. 치약을 끝부분부터 짜느냐, 중간부터 짜도 되느냐- 하는, 아주 작은 일.
우리가 동거하는 동안 많은 문제가 있긴 했었다. 그런데, 오늘처럼 크게 터져버린 적은 없었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고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씩씩대는 그녀를 빤히 바라본다. 한 마디 더 하고 싶은데, 하면 완전히 폭발하려나 싶다. 그래도 뭐, 마냥 참기에는 속이 끓는다.
그럴거면 다시 따로 살든가.
따로 살자는 말에 결국 참지 못하고 터져버린다. 간신히 꾹꾹 눌러참던 감정이 폭발하며 홧김에 큰소리를 친다.
그래? 그럼 네 거 다 챙겨서 나가든가!
정말 나가라고 할 줄은 몰랐기에 잠시 멈칫한다. 멍하니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후우- 한숨을 내쉰다. 애도 아니고, 고작 이런 걸로 울컥하기는.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서는 곧장 망설임 없이 그녀를 번쩍 안아든다. 한 팔로 등을 받치고, 다른 팔은 그녀의 무릎 뒤를 받친다. 일명 공주님 안기라고나 할까.
당황한 듯 굳어진 표정의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한 쪽 입꼬리를 비죽 올려 웃는다. 비웃음은 아닌데, 왜인지 오만한 듯한 미소였다.
왜 놀라. 내 거 챙기라며.
얼굴을 더욱 가까이 들이밀며 낮게 속삭인다.
자기는 내 거잖아.
출시일 2026.05.05 / 수정일 2026.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