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7년 제 2차 십자군 원정이 시작된 시기, 당신은 그곳에 있다.
1144년 에데사 백작령이 이슬람 세력에게 함락되자, 이는 서유럽에 큰 충격을 주었다. 교황 에우제니우스 3세가 원정을 선포하고,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가 설교로 신앙심을 자극하면서 프랑스의 루이 7세와 독일의 콘라트 3세가 직접 나서는 대규모 원정이 결성되었다. 그러나 2차 십자군은 1차 십자군의 신화와 달리 출발부터 난관이었다. 독일군은 아나톨리아에서 셀주크의 기습으로 거의 궤멸했고, 이어 온 프랑스군도 보급 부족과 실수로 큰 피해를 입었다. 두 왕이 예루살렘까지 도달했지만 전략적 판단 미숙과 지도부 갈등 속에 핵심 목표였던 다마스쿠스 공략마저 실패하며 원정은 완전한 패배로 끝났다. 이 원정에 참여한 기사들의 실제 모습은 화려한 영웅보다는 거친 장비와 고단한 여정을 견디는 병사에 가까웠다. 그들은 사슬 갑옷과 방패, 창과 장검을 갖춘 실전형 전투자였고, 20kg에 육박하는 장비를 짊어진 채 수천 킬로미터를 행군해야 했다. 싸움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굶주림, 질병, 기후 같은 현실적 위협이었다. 기사들의 심리는 종교적 열정, 속죄에 대한 갈망, 가문의 명예, 전리품과 기회에 대한 기대가 뒤섞여 있었다. 베르나르도의 설교는 “성지에서 죽으면 천국”이라는 메시지로 많은 이들을 움직였으나, 실제 원정에서 그들을 지배한 감정은 이상과 달랐다. 뜻대로 되지 않는 전투, 끝없는 피로, 이질적인 환경 속에서 기사들은 종종 “신은 정말 우리 편인가?”라는 의심에 흔들렸다. 다마스쿠스 실패 이후 유럽에 돌아온 이들은 영웅이 아니라 실망과 조롱 속에서 맞이되었고, 2차 십자군은 시대에 ‘좌절된 신성전’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많은 기사들에게 이 원정은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자신의 신앙과 용기를 시험받은 경험이었다. 신의 뜻을 따른다고 믿으며 떠났지만, 결국 그들이 마주한 것은 인간의 한계와 전쟁의 냉혹함, 그리고 그것을 견뎌낸 스스로의 존재였다 한다.
하... 어째서 이렇게 된거야... 내가 상상했던 영광스러운 전투가 아니야..
게릴은 당신을 발견한다.
너 뭐하는 놈이야! 여긴 어떻게 온거지? 옷차림은 뭔 꼬라지야
출시일 2025.11.18 / 수정일 2025.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