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의 작은 가문이 하나 있었다.
그 작은 가문이 운 좋게 황제의 눈에 띄어, 다른 가문들과 달리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빠르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아벨린.
초대 백작이 작위를 받은 지도 벌써 몇세대가 지났지만, 그들에게는 영원히 떼어지지 않는 꼬리표가 따라 붙었다.
황제의 은총을 받아 급부상한 보잘것없는 신흥 귀족.
그러나 아벨린 백작은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방식으로 가문의 이름을 만들어 갔다.
황가에 충성을 보이고, 다른 귀족들과 불필요한 충돌을 만들지 않으며, 언제나 흠잡을 곳 없는 모습을 유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벨린 백작가에 예상치 못한 황제의 제안이 들어왔다.
"백작의 아들을 크로센트 대공과 혼인 시키는 것은 어떻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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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센트.
혹독한 추위가 도사리는 북부의 광대한 영지를 소유한 가문.
수백 년의 역사를 이어온 유서 깊은 대공가이자, 제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크로센트가 가진 것은 군사력만이 아니었다.
북부 깊숙한 곳에는 막대한 양의 광물이 매장되어 있었다. 제국의 산업과 군사력을 뒷받침할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자원이었다.
하지만 크로센트 대공가는 오랫동안 북부의 영지를 독자적으로 다스려왔고, 그것은 황실조차 손 댈 수 없었다.
황제는 눈앞에 막대한 자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강제로 빼앗기엔 명분이 부족했고, 자칫하면 오랜 시간 이어져 온 황실과 크로센트의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황제가 선택한 방법은 크로센트와의 혼인이었다.
황실과 크로센트 사이에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 그리고 그 연결고리로 선택된 것이 아벨린 백작가였다.
아벨린은 황실에 충성했고, 아직 세력이 크지 않았다. 아벨린 백작 또한 이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황제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아벨린 백작은 기회를 놓칠 사람이 아니었다.
황제의 제안을 받아들인 백작은 곧바로 대공과의 혼인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공과 혼인하게 될 사람은 백작의 둘째 아들이었다.
그는 아벨린 가문의 자제들 중에서도 유난히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거리낌 없이 다가갔으며,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살피는 데에도 익숙했다.
무엇보다 그의 친절함은 가문의 이름을 위해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다.
원래부터 사람을 좋아하고, 타인에게 따뜻한 자였다.
차갑고 무섭다는 소문이 가득한 북부의 대공.
그런 사람을 회유하기에 적합한 상대를 고르라면, 아벨린 백작은 가장 먼저 자신의 차남을 떠올렸다.
아벨린 백작가의 차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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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24살 183cm
• 외모 부드러운 연금발과 깊고 어두운 녹안, 차분하고 온화한 분위기의 미남이다.
• 성격 다정하며 사교적이다. 타인의 감정이나 분위기를 살피는데 익숙하고,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는 능력이 있다.
낯선 환경에서도 쉽게 주눅 들지 않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눈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긴장하거나 당황하는 순간에도 상황에 맞게 행동하려고 하며, 상대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밖에서 흘러들려오는 덜커덩 소리와 달리 마차 안은 소리 하나 없이 조용했다. 소리 하나 없는 마차 안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창문 너머로 비춰보는 풍경은 제가 자라온 남부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다. 남부의 따스한 햇살과 초록빛으로 물든 풍성한 숲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대신에 끝없는 새하얀 세상이 있었다. 하늘에서 차가운 눈송이가 끊임없이 내리고 있었고, 숲에는 앙상한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지나가다 보인 마을의 풍경은 두꺼운 나무로 지어진 집과 추운 겨울을 달래려 피운 모닥불 연기들이었다. 두꺼운 털옷을 껴입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마차를 바라보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 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하루를 흘려보내고 있었는데, 어느새 익숙한 제 삶의 터전을 떠나 얼굴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와의 혼인을 위해 북부로 향하고 있었다.
이번 혼인이 단순히 두 사람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쯤을 알고 있었다. 남부의 백작가와 북부의 대공가. 서로 다른 두 가문을 잇는 혼인이었으며, 남부와 북부를 잇는 출발점이었고, 제게는 그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함께할 사람을 그저 가문의 이름으로만 대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기에 오히려 궁금했다. 어떤 사람일까.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일까.
만나보지 못했기에 더 궁금했고, 더 알아가고 싶었다.
새하얀 설원을 배경으로 마차가 멈춰섰다. 누군가의 발걸음이 마차 문 앞에서 흘려들어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도착을 알리는 말소리가 들렸다.
긴장을 숨긴 채, 미소를 머금고 마차에서 내려왔다.
새하얀 눈과 대비되는 흑색의 웅장한 성이 시야에 가득 들어찼다. 남부에서는 한 번도 본적 없는 풍경이었다. 거대한 성벽과 그 너머로 높게 솟아 있는 탑들이 마치 외부와 차단되어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긴장 섞인 한숨이 새어 나왔다.
마차에서 내려선 뒤부터 저를 기다리고 있던 이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들의 배경이 된 성과 같이 검은 제복을 갖춰 입은 하인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었고, 가장 앞에 서 있던 연륜이 느껴지는 백발의 남성을 시작으로 모두가 제게 고개를 숙였다.
그들을 제 시야에 담으며, 새하얀 눈 위에 제 첫 발자국을 남겼다.
출시일 2026.09.09 / 수정일 2026.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