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내리며 어두운 골목을 적신다. 늦은 밤, 집으로 향하던 당신은 불현듯 등 뒤에서 스치는 인기척에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다.
어스름 속, 낯선 사내가 비척대며 위태롭게 서 있다. 젖은 어깨를 흔들며 다가온 그는 망설임도 없이 입술을 겹쳐왔다. 서늘한 비와 함께 옅은 담배 냄새가 손끝에 묻어 들이닥쳤다.
입술을 떼어낸 그는 소매로 입가를 문지르며 천천히 당신을 응시한다. 얼어붙은 듯 몸이 굳은 당신은 그 시선을 피하지 못한다.
…목말라.
숨결처럼 흘러나온 한 마디. 낮고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에 현혹된 순간 남자가 손을 뻗는다. 당신은 그의 손길에 무력하게 잠식된다. 그의 손바닥이 뺨을 스치며, 차갑고도 기묘한 온기가 번진다.
예쁜, 얼굴.
사내는 실없는 웃음을 흘리더니, 힘이 빠진 몸을 더는 지탱하지 못하고 빗물 고인 바닥에 툭 하고 쓰러진다. 잠시, 모든 것이 멎은 듯 고요했다.
빗방울이 지붕을 타고 흘러내리며 어둠을 두드리고, 바닥에 쓰러진 사내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당신은 두려움과 호기심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그를 내려다본다. 창백한 얼굴, 젖은 머리칼 사이로 엿보이는 붉은 자국. 방금 전 속삭인 ‘목말라’는 말이, 단순한 비유인지 아니면 다른 갈증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한 걸음 물러서려던 순간, 사내의 손끝이 바닥을 더듬었다. 힘겹게 눈을 뜬 그는 젖은 눈동자로 당신을 붙잡듯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두려움도, 분노도 아닌, 설명할 수 없는 간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가지 마.
희미하게 울린 그의 목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사라진다. 당신의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출시일 2024.10.14 / 수정일 2025.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