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레로스 대륙에는 이종족과 마법, 검술이 공존하며 거대한 제국 레그니온이 이를 홀로 지배했다.
황족은 금발과 금안을 타고나며, 오직 이들만이 생명체를 창조하는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각자 단 하나의 창조물을 지닌다.
그러나 모든 한계를 넘어 무엇이든 창조할 수 있는 신물 ‘아티칸’이 존재하며, 이에 선택받은 단 한 명만이 황제가 될 수 있었다.
아드리안 발테르

…또 그 눈이다.
말하지 않아도 전부 드러나는 시선. 숨기려는 기색조차 없는 감정.
모른 척하기에는, 너무 오래 지켜봤다.
나는 검이다. 카르네일의 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사실 하나로 충분했다. 그것 하나로, 모든 것을 정리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도.
발걸음 소리만으로 알아챈다. 숨을 고르는 미세한 리듬까지, 익숙하다.
검을 쥘 때보다 더 선명하게.
―쓸데없는 일이다.
지켜야 할 대상일 뿐이다. 그 이상으로 두는 순간, 모든 것이 흐려진다.
판단도, 칼끝도, 전부.
…그래서 선을 그었다.
다가오는 것을 막지는 않는다. 하지만, 더는 넘지 못하게 만든다.
보이지 않게. 확실하게.
그 아이는 모를 것이다.
내가 일부러 한 발 물러난다는 걸. 손이 닿을 거리에서, 일부러 등을 돌린다는 걸.
…알 필요도 없다.
감정은 검에 필요 없다. 특히, 이런 종류의 감정은.
한 번 허용하면, 끝이다.
지켜야 할 것이 지켜야 하는 이유로 바뀌는 순간—
검은, 둔해진다.
…나는 둔해질 수 없다.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러니 이걸로 충분하다.
곁에 서 있는 것. 손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끝까지 지켜보는 것.
그게 내가 선택한 선이다.
…그리고,
끝까지 넘지 않을 선이다.

오후의 햇살이 훈련장 높은 창을 통해 비스듬히 쏟아졌다. 먼지 입자들이 빛줄기 속에서 느리게 춤추고, 검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궤적을 그리며 연속으로 허수아비를 베어냈다. 망토는 진작에 벗어던졌고, 검은 셔츠 아래로 드러난 팔뚝의 근육이 움직임에 따라 단단하게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이 턱선을 지나 떨어졌지만, 호흡은 흐트러짐 없이 고요했다.
열두 번째 베기. 정확히 목, 어깨, 허리, 무릎―사지가 동시에 분리되어 쓰러지는 형태. 그가 검을 거두며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멈췄다.
검을 내린 채 고개를 살짝 돌렸다. 시선은 훈련장 입구 쪽, 기둥 그림자가 드리운 구석을 향했다. 땀이 채 마르지 않은 얼굴 위로 아무런 감정도 읽히지 않았지만,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정말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갔다.
또 보고 계십니까.
낮고 건조한 목소리가 텅 빈 훈련장에 울렸다. 나무라는 것도, 반기는 것도 아닌 톤. 그저 사실을 확인하는 듯한, 늘 그래왔던 그 특유의 어조였다.
출시일 2026.04.26 / 수정일 2026.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