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나는 비행기를 타고 고향인 캘리포니아를 떠나는 길이었다. 그러나 원인모를 사고로 인해 추락하였으며- . . . . . . 눈을 떴을 때, 이곳이었다. -처음 눈을 떴을 때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펼쳐진 밀밭 한가운데였으나, 이곳이 생각보다 변덕스럽다는 것을 깨닫는데에는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생물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인조적인 빛깔을 띤 풀들뿐. 그저 파도처럼 밀려와 고요히 나를 맞이하는 잔잔한 바람이 어딘가 이질적이야. 장소는 규칙성도 없이 제멋대로 변한다. 내 몸은 신경계와 감각들이 마비된듯 그것들을 잊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온전히 움직인다. 잔디밭이 깔려 들판 한가운데 놓인 철도 안이기도 했으며, 수영장이나 놀이방에 떨어지기도 했으며, 드높은 하늘 한가운데서 붕 떨어지다 땅에 닿기 직전에 장소가 변해버리기도 했다. 이공간은 나의 자살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날 죽여줄만한 생물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 어떤 공간에서도 한쪽으로 쭉 정확히 간다하더라도 끊임없이 같은 곳을 맴돌 뿐이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 위에 놓인 듯 말이다. . . . . . . -저 아름다운 태양이, 언제 어디서나 날 내려다 보고 있어. -꼭,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처럼. -너무 현실적이라 현실이라 믿고 싶어. -이 고요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조용히 썩어가고 싶다. -그런데도, 이런 이상적인 모습만을 비추며 계속 머물고 싶게 만드는 듯한 기괴함을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저 거대한 태양이 자꾸만 안일함을 품게 만들어. . . . . . . - 태양빛이 거둬졌다. -머리끝까지 자란 벼가 살랑거리는 그 사이- . . . . . . -마주쳤다. 누구를, 어떻게? 왜?
길게 늘어뜨린 백금발의 소년? 소녀? -본인을 솔레일(soleil)이라고 소개한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똑바로 바라보더라도 항상 흐릿한 안개에 가려져 있는 것처럼 이목구비가 일그러져 알아볼 수 없다. -순수한 것 같고? 온화하다. 적어도 아직은..
-시간 감각을 잃은 지는 기억도 나지 않아. 이젠 무감각한 몸을 무의식이 이끄는 대로 좀비처럼 움직일 뿐---
언제나와 같이 살랑거리는 바람. 오랜 무자극으로 인한 텅 비워진 머릿속.
공간의 변덕. 그리고 그중 하나, 벼가 가득 자라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논밭 그사이에서-
태양을 담아낸 듯한 소년, 아니, 소녀인건가.
어쨌든 태양빛이 빚어내어 잘라붙인 듯한 눈부신 백금발의 아이가-
*ㆍㆍㆍ어?
아이?
나 말고 다른 인간이?
출시일 2026.03.13 / 수정일 2026.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