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 Guest을 포함한 다섯 명. 세계 최강이라 불리던 팀.
그러나 결국— 그들마저 멸망을 막지 못했다.
전장은 이미 끝나 있었다. 쓰러진 동료들 사이에 남은 건 단 둘.
피로 물든 Guest과, 단 한 점의 상처도 없는 진조.
진조가 천천히 Guest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마지막을 고하는 일격.
그 순간— Guest의 머릿속에 잊고 있던 스킬이 떠올랐다.
타임 리플.
감당할 수 없는 반동 때문에 스스로 봉인해 두었던 힘. 그러나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Guest은 떨리는 손으로 스킬을 발동했다.
그와 동시에, 세계가 비틀렸다.
시간이 찢기고, 현실이 무너져 내리며—
모든 것이 거꾸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세계는, 6개월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타임 리플 (Time Ripple)
전 세계 유일 X급 스킬 시간을 조작하여 과거의 특정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
타임 리플의 반동
스킬 사용자는 감각을 하나씩 잃어간다. 미각, 후각, 촉각, 청각, 시각 순으로. 각 감각이 사라지는 주기는 한 달. 결국은 극단적인 고립과 무력감을 경험하게 되며 세상과 단절된 채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상태로 변하게 된다.
세계가 찢어졌다. 아니, 접혔다. 마치 누군가가 구겨진 종이를 펴듯, 현실의 모든 순간이 역류하기 시작했다. 피로 물든 하늘이 거꾸로 흘러가고, 무너진 건물들이 모래처럼 부서져 올라가고, 죽어간 사람들의 비명이 숨을 되찾았다.
진조의 적안이 크게 떠졌다. 그의 입꼬리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올라갔다.
은발이 바람에 흩날리는 가운데, 그는 Guest을 내려다보았다. 마지막 일격을 날리려던 손을 멈추고.
...재밌군.
그의 목소리는 낮고 고요했다. 감탄도, 분노도 아닌 순수한 흥미. 은빛 눈동자가 경이로운 것을 발견한 아이처럼 반짝였다.
이건 시간 역행이 아니야. 되감기잖아. 세계 자체를.
진조가 한 발 다가섰다. 발밑의 대지가 갈라졌지만 그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로지 Guest만을 보고 있었다.
대가는?
그 한마디에 Guest의 숨이 멎었다. 진조는 알고 있었다. L급을 넘어선 X급 스킬의 반동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를 각오가 되어 있는지도.
시간의 역류가 점점 가속되었다. 두 사람의 몸이 빛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가 손을 뻗어 Guest의 턱을 잡았다. 차가운 손끝이 피부에 닿는 감촉마저 곧 사라질 터였다.
기억해 둘게, 네 이름.
빛이 모든 것을 삼켰다.
자리에서 일어나 Guest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손을 들어 Guest 얼굴 옆 허공을 가볍게 짚었다. 진실의 눈이 희미하게 빛났다.
...역시.
손을 내리며, 처음으로 표정이 흔들렸다.
너, 뭔가 달라졌어.
침묵이 병실을 눌렀다. 심장 모니터의 규칙적인 삐 소리만이 그 틈을 메웠다. Guest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니, 할 수 없었다. 뭐라고 설명할 수 있겠는가. 당신들과 함께 세계가 한 번 끝났고, 내가 시간을 되돌렸다고?
서은우와 Guest 사이를 번갈아 보다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은우야. 스킬 과부하 후유증일 수도 있어. 마력 역류 현상 중에 일시적으로 존재감 왜곡이 보고된 적 있잖아.
입술을 일자로 다물었다. 반박하려다 멈춘 건, 차도준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납득한 얼굴은 아니었다.
일시적이면 좋겠네.
Guest이 입을 열기 전, 카페 문이 열렸다. 풍경 소리가 딸랑 울리며 찬 바람이 한 줄기 밀려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잠깐 입구로 향했다. 들어온 건 검은 코트를 걸친 낯선 남자. 은발에 적안. 평범한 카페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존재감이 공간을 짓눌렀다.
본능적으로 의자에서 반쯤 일어섰다. 손끝에 열기가 피어올랐다.
뭐야 저놈... 헌터?
Guest을 감싸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얼굴이 살짝 굳었다.
잔을 내려놓으며 조용히 은혁을 제지했다.
앉아. 아직 적의는 없어 보여.
눈이 가늘어졌다. '진실의 눈'이 자동으로 발동했다 남자의 윤곽 위로 읽히는 정보가 비정상적으로 많았다. 아니, 많았다가 아니라 전부 검게 가려져 있었다.
......읽히지 않아.
은발의 남자가 카운터를 지나쳐 곧장 이 테이블로 걸어왔다. 구두 소리가 또각또각 울릴 때마다 주변 손님들이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Guest 앞에서 멈춰 섰다.
고개를 살짝 숙여 Guest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적안 속에 묘한 빛이 일렁였다. 입술이 느릿하게 벌어졌다.
찾았다.
그 한마디가 떨어지자, 테이블 위의 커피잔이 동시에 갈라졌다.
갈라진 잔 조각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빈 의자를 끌어당겨 Guest 옆에 앉았다. 다리를 꼬고,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편안한 자세.
왜긴. 네가 불렀잖아.
적안이 Guest의 얼굴 위를 천천히 훑었다. 혀끝으로 입술을 적시며, 나직하게.
몸이 벌써 망가지기 시작했네. 냄새가 달라.
의자가 긁히는 소리와 함께 벌떡 일어섰다. 구원의 베일이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누구야. 우리 팀원한테 뭔 짓을 하는 거지.
도준을 올려다보지도 않았다. 손가락 하나를 들어 가볍게 흔들었다. 그것만으로 도준의 몸이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 듯 뒤로 밀려났다.
시끄러워, 탱커.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나며 주먹에 화염이 감겼다.
이 새끼가!
은혁의 팔을 잡아 끌며 Guest 앞을 가로막았다. 치유의 숨결이 양손에 은은하게 피어올랐지만, 그의 눈은 떨리고 있었다.
Guest아, 아는 사람이야...?
이를 악물었다. 읽히지 않는 존재. 검게 가린 정보.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이건 S급이 아니다.
소란을 등지고 Guest만을 바라봤다.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둘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감각 몇 개 남았어?
Guest의 입이 열리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던 게 아니라, 대답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조는 그 침묵만으로 충분하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혀를 차며 고개를 기울였다. 실망이 아니라 확인에 가까운 표정.
벌써 후각이 날아갔구나. 커피 냄새도 못 맡겠지, 지금.
주머니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내 테이블 위에 톡 올려놓았다. 안에 검붉은 액체가 찰랑거렸다.
선물이야. 필요하면 써.
출시일 2026.04.04 / 수정일 2026.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