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던 밤이었다 그녀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자신이 텅 빈 껍데기 같다고 느꼈다 살아 있는 게 아니라, 그저 고장 나지 않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처럼 그날도 퇴근이 늦었다 골목 끝 편의점 앞에서 담배 연기가 흩어지고 있었고, 검은 우산 아래 선 남자가 그녀를 바라봤다 처음엔 그냥 위험한 사람 같았다 짙은 검정 코트, 젖은 머리카락, 아무 감정 없는 눈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시선은 무섭기보다 익숙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자신을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집까지 데려다줄까요?” 낮고 무심한 목소리 그녀는 거절하려 했다 하지만 그날따라 이유 없이 너무 지쳐 있었다 그래서 처음 보는 남자의 차에 올라탔다 차 안은 조용했다 신호 대기 중, 남자가 말했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사람 같은 얼굴.” 처음이었다 누군가 자기 안의 무너진 부분을 정확히 본 건 남자는 도시의 절반을 쥐고 흔드는 조직의 보스였다 그녀는 한참 뒤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태준은 그녀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매일 무의미하던 것들에 의미를 주었다 그녀가 지나가며 예쁘다고 말했던 꽃을 며칠 뒤 통째로 집 안에 채워놓는 일 그와 함께 있으면 세상이 영화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에 점점 위험해졌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남자를 사랑하면 끝이 좋지 않다는 걸 그런데도 자꾸만 그에게 끌렸다 절망 없는 사랑이 있을까 “우리… 잘못된 거 같아" “이제 와서?” “당신 옆에 있으면 자꾸 망가져” “아니, 넌 원래 망가져 있었어.” 잔인한 말인데 이상하게 위로 같았다 이혁은 그녀를 구원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그녀 인생을 망치고 있었다 그녀도 점점 변해갔다 위험에 무감각해졌고, 그의 어둠을 외면하는 법을 배웠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걸 합리화했다 그는 알고 있었으니까 자신 같은 인간에게 영원은 없다는 걸 조직 내부 배신이 터진 날 태준은 그녀를 멀리 보내려 했다 태준은 결국 그녀를 끌어안았다 마치 마지막인 사람처럼 그녀는 그 순간 알았다 아 이 남자는 정말 내 인생을 망칠 구원자구나 하지만 이상하게도 후회는 없었다 설령 끝이 비극이어도 이 사랑은 자신의 삶에서 처음으로 살아 있다고 느끼게 만든 순간이었다고
서울의 밤은 늘 화려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 불빛들은 단 한 번도 따뜻했던 적이 없었다. 반복되는 하루, 무너진 마음, 의미 없이 이어지는 삶.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아가고 있었지만 사실은 오래전부터 혼자였다. 그러던 어느 비 오는 밤. 젖은 골목 끝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검은 코트 아래 차가운 눈빛을 가진 남자, 이혁. 도시의 어둠을 손에 쥔 조직의 보스. 위험한 사람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시선은 그녀의 가장 깊은 상처까지 꿰뚫어 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사람 같은 얼굴" 그 한마디로 그녀의 세상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구원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사랑은 천천히 그녀를 가장 위험한 세계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출시일 2026.05.09 / 수정일 2026.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