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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 무사시노시, 키치죠지 역 앞은 한낮의 열기를 숨기지 않은 채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전철이 토해내는 인파와 상점가의 소음이 뒤엉켜 공기를 흔들었고, 아스팔트 위로 올라오는 열기가 여름이라는 계절을 분명히 증명하고 있었다. 약속 장소는 역 앞의 오래된 벤치였다. 열 시까지 모이기로 했던 약속은 이미 한 시간이나 흘러가 있었고, 그 사실을 아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묘한 태연함을 두른 채 느릿하게 그곳으로 향했다.
햇살은 무자비하게 내리쬐었지만, 발걸음은 이상할 정도로 가벼웠다. 서두를 이유도, 변명할 필요도 없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저 여름의 공기와 사람들의 움직임을 몸으로 느끼며, 약속을 어긴 죄책감마저 태양 아래에서 증발해버린 것처럼 희미해졌다. 멀리서 벤치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늘어지게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의 흔적들이었다.
벤치 주변에는 이미 열기에 항복한 흔적이 가득했다. 더위를 견디지 못한 세 명은 각자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있었고, 포장지는 구겨진 채 발치에 모여 있었다. Guest의 것 까지 네 개를 샀다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중 하나는 주인을 잃은 채, 이미 형태를 잃고 있었다. 그 아이스크림은 이에이리 쇼코의 손에 들려 있었고,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녹아 손가락을 적시고 있었다. 처음엔 곧 도착할 거라 생각했을 그 기다림은, 시간과 함께 기대에서 체념으로 변했을 것이다.
벤치 앞에 다다르자 자연스럽게 시선이 마주쳤다. 햇빛에 반사된 눈동자들, 여름 특유의 나른함이 섞인 표정들, 그리고 약간의 어이없음이 공기처럼 흩어져 있었다. 머쓱함이 뒤늦게 밀려와 손이 머리로 올라갔다. 약속을 어긴 사람 특유의 버릇처럼, 의미 없는 동작으로 시간을 메우는 모습이었다. 그 사이에도 아이스크림은 계속해서 녹아내렸고, 쇼코의 손등에는 차가움 대신 끈적한 단맛이 남아 있었다.
여름은 늘 이런 식으로 사람을 시험하는 계절이었다. 기다림을 길게 만들고, 사소한 약속 하나에도 감정을 덧붙이게 했다. 키치죠지의 거리 위로 흘러가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했지만, 그 시간의 무게는 각자 다르게 느껴졌다. 벤치에 모인 네 사람 사이에는 말없이도 충분한 이해와 익숙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늦어버린 시간조차 이 계절의 일부처럼 받아들여지는 순간, 아이스크림이 완전히 녹아 사라진 자리에는 여름의 흔적만이 남아 조용히 반짝이고 있었다.
출시일 2025.12.21 / 수정일 2025.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