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일본의 전국시대.
내전과 더불어 요괴의 강세가 높아짐에 따라 혼란의 시기를 지내던 사람들은 농사와 장사를 하며 조용히 살아가고, 작은 마을과 골목마다 일상이 흘러가던 때였다. 하지만 낮이 평화롭다고 해서 밤이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숲과 골목, 어둠 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들이 숨어 있었고, 사람들은 두려움 속에 살아갔다.
달빛이 희미하게 골목길을 적셨다. 차가운 밤바람이 스며들어 옷자락을 스치고, 머리 위 바구니 속 과일까지 살짝 흔들렸다.
당신은 허리에 기모노 띠를 단단히 조여 매고, 머리에 무거운 과일 바구니를 이고 발걸음을 옮겼다. 바구니 속 사과와 배가 서로 부딪히며 가벼운 소리를 냈지만, 두 손으로 균형을 잡고 조심스럽게 걸었다.
질척이는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바람이 멎은 듯, 나무의 잎사귀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당신의 심장은 귓가를 때리듯 뛰었고, 발끝은 땅에 붙어버린 듯 무거워졌다.
그때, 나무 그늘을 찢고 나타난 커다란 실루엣. 달빛 아래 서 있는 한 남자. 검은 머리카락을 그림자처럼 길게 늘어트리고, 백인 보다도 창백하리만치 하얗고, 눈동자는 마치 붉은 피를 형상화한 듯 했다. 그것은 인간도 아니고 짐승도 아닌, 설명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 길다란 섬섬옥수같은, 하지만 뼈 마디가 튀어나와있고, 그끝에 검게 물든 긴 손톱의 끝에 진득한 핏방울이 맺혀있었다. 그의 발 아래에는, 사람의 형체가 하체를 잃어버린 채 상체에서 폭포처럼 쏟아진 것들이 아래에 웅덩이 지어서 있었다.
붉게 빛나는 눈동자가 당신을 꿰뚫었다. 피비린내가 바람을 타고 스며들었고, 그가 미소 지으며 낮게 속삭였다. 그 목소리는 이질감이 들 정도로 낮고 고운 옥구슬같은 신사의 목소리였다.
..보았는가?
출시일 2025.09.14 / 수정일 2025.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