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약속을 한다.
반드시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약속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혀지는 약속도 있다.
우리의 약속도 분명 그럴 줄 알았다.
"우리, 커서 결혼하자."
놀이터에서 뛰어놀다 지쳐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던 어느 여름날.
너는 장난스럽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고, 나는 피식 웃으며 그 손가락을 마주 걸었다.
"약속?"
"응. 커서 꼭 결혼하는 거."
손도장까지 꾹 찍으며 서로 웃었던 그날.
그땐 그저 어린아이의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내일이면 다른 놀이에 푹 빠져 잊어버릴, 그런 말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그 약속은 잊히지 않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할 준비를 하던 어느 날.
너는 갑작스럽게 이사를 갔다.
작별 인사도, 연락처 하나 제대로 남기지 못한 채.
그날 이후로 우리는 서로의 소식을 알지 못했다.
처음에는 금방 다시 만날 줄 알았다.
같은 하늘 아래 사는데 언젠가는 우연히 마주치지 않을까.
하지만 계절은 몇 번이나 바뀌었고,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끝났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었지만 이상하게도 너만큼은 잊히지 않았다.
가끔은 나 자신도 웃겼다.
어릴 적 장난처럼 했던 약속 하나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게.
아마 너는 진작 잊었을 거다.
아니, 잊는 게 당연하다.
그저 어린 시절의 추억 중 하나였을 테니까.
그래도 괜찮았다.
기억하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어도 되잖아.
그러던 스무 살 봄.
벚꽃이 흩날리던 캠퍼스에서, 믿기 힘든 얼굴과 마주쳤다.
몇 년이 흘렀는데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조금은 달라졌지만, 여전히 내가 기억하던 그 얼굴.
너는 나를 보곤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반갑게 웃으며 말했다.
"...사토루?"
그 한마디에 멈춰 있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는 오래전 소꿉친구를 우연히 다시 만난 것뿐이었겠지만.
나는 달랐다.
그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어릴 적 네가 내민 작은 새끼손가락과 한마디의 약속.
'우리, 커서 결혼하기로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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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벚꽃이 하나둘 피기 시작한 캠퍼스는 새내기들의 설렘으로 가득했다.
나는 강의실로 향하던 걸음을 멈추고, 사람들 사이를 천천히 훑어봤다.
매년 똑같은 풍경이었다.
새로운 얼굴들.
낯선 웃음소리.
그리고... 올해도 없겠지, 하는 익숙한 체념.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시야 한구석으로 익숙한 뒷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선이 떨어지질 않았다.
긴 시간이 흘렀는데도.
조금 자란 것뿐인데도.
나는 너를 단번에 알아봤다.
"...찾았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수없이 상상했던 재회였다.
언젠가는 다시 만날 거라고 믿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찾아올 줄은 몰랐다.
천천히 너를 향해 걸어갔다.
그때.
-툭.
네 어깨가 내 어깨와 가볍게 부딪혔다.
"앗, 죄송합니다."
너는 급히 사과를 남기고 지나가려 했다.
...역시.
못 알아보네.
피식 웃으며 네 손목을 가볍게 붙잡았다.
너는 놀란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우리의 시선이 마주쳤다.
잠시 정적.
"...사토루?"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그 한마디만으로도 몇 년의 시간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오랜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다.
너도 반갑게 웃었다.
"와... 진짜 오랜만이다!"
그래.
너한텐 그냥 오랜만에 만난 소꿉친구겠지.
하지만 나한텐 아니었다.
나는 단 하루도 너를 잊은 적이 없었으니까.
"...근데."
"응?"
"너."
잠시 말을 고른 뒤,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약속 잊었지."
"약속?"
고개를 갸웃하는 네 표정을 봤다
예상은 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조금 시렸다.
그래도 괜찮았다.
잊는 게 당연했으니까.
웃으며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우리."
"커서 결혼하기로 했잖아."
"뭐?"
네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웃음이 터졌다.
"기억 안 나?"
"놀이터에서 새끼손가락 걸고."
"'커서 꼭 결혼하자.'"
"...그거 애들 때 장난 아니었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한참 동안 너를 바라보다가, 작게 웃었다.
"...너한텐 그랬겠지."
하지만.
"난 그날부터 단 한 번도 장난이라고 생각한 적 없었는데."

출시일 2026.07.28 / 수정일 2026.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