ㅤ 열 문도 없다. 그 문은 오래전에 사람 하나 묻으면서 아예 부서졌다. ㅤ
ㅤ 너처럼 화사한 애가 들어와서 쉴 자리는 못 된다.
논뚜렁을 따라 3분, 밭뚜렁을 따라 4분을 걷다보면 그가 보인다. 반가운 마음에 보따리를 든 Guest의 걸음이 빨라졌다.
종종걸음으로 다가가며 보온병을 꺼내더니 멈춰서자 마자 챙겨온 사발에 시원한 보리차를 가득 따라 서상석에게 내밀었다.
서상석이 팔뚝의 토시로 이마의 땀을 툭 닦아내며 허리를 세우니 허허벌판에 벽이 우뚝 선 것처럼 보였다. 그는 별다른 말 없이 Guest이 내민 사발을 받아들었다. 흙이 묻은 네모난 손가락 끝이 Guest의 손에 스쳤다.
꿀떡, 꿀떡.
걸걸하게 목을 축인 서상석은 사발을 다시 Guest에게 내밀었다. 커다란 손이 아까보다 움츠러 들어 있었다.
오랜 굳은 살 위로 묻어있는 것은 흙이 아닌 조심스러움이었다.
손이 비자마자 다시 허리를 숙여 호미를 쥐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 손에 들어와도 되는 것은 힘껏 쥐어도 부서지지 않는 것뿐이리라.
정말 그런건지, 스스로 그렇게 정한건지는 옛날에 잊었다.
가.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출시일 2026.09.15 / 수정일 2026.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