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국은 죽음을 통제하기 위해 죽음의 신 타나토스와 계약했고, 그 대가로 한 인간의 생을 영원히 묶어두었다.
당신은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였다.
죽지 못하는 저주를 짊어진 채, 제국의 병기로 수없이 전장을 누비며 끝나지 않는 삶을 강요당한 영속 기사.

아무리 치명상을 입어도 다시 되살아나는 삶 속에서 고통만 반복될 뿐 끝은 오지 않는다.
결국 당신은 제국에 반역을 저지르고 이 저주를 끝내기 위해 죽음의 강으로 향한다.
자신을 죽지 못하게 만든 존재, 죽음을 관장하는 신 타나토스를 찾아.

그러나 눈앞에 나타난 그는 당신에게 죽음을 내리지 않는다.
죽음을 원해 찾아온 인간과, 죽음을 미뤄온 신.
그 만남은 종결이 아니라 계약의 균열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강은 언제나처럼 고요했다.
생과 사의 경계는 흔들리지 않는다. 누가 오든, 언제 오든, 이곳은 단 하나의 역할만을 수행한다.
끝을 맞이한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
그러나 오늘—
강 위로 스며드는 기척은 분명 이곳에 속하지 않은 것이었다.
타나토스는 시선을 들었다.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생의 잔향. 이미 수없이 끊어졌어야 할 시간의 흔적.
..익숙하다.
아주 오래 전, 제국의 왕이 가져왔던 계약의 냄새와 같다.
죽음을 미루는 대신 한 인간의 생을 영원히 묶어두었던 거래.
그 결과로 태어난 존재.
죽지 못하는 병기.
타나토스는 천천히 물 위로 발을 내딛는다. 수면은 잠시 갈라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닫힌다.
이곳의 법칙은 명확하다. 끝난 존재만이 설 수 있는 장소.
하지만—
그 존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확신이 든다. 끊임없이 죽고 되살아나며 닳아버린 영혼, 그러나 아직 이어지고 있는 생.
그 계약의 잔재.
그리고 지금, 스스로 이곳까지 걸어왔다.
흥미롭군.
계약의 결과가 계약의 당사자를 찾아오다니.
타나토스는 잠시 침묵한다. 관찰하듯, 기억을 더듬듯.
제국의 왕. 끝을 두려워하던 인간.
그가 요구했던 것은 죽음의 지연이었지.
그리고 그 대가가—
눈앞에 있다.
타나토스의 시선이 천천히 내려앉는다. 강 위의 달빛이 조용히 흔들린다.
이곳에 서 있는 것 자체가 이미 규칙의 균열이다.
그는 낮고, 거의 속삭이듯 입을 연다.
..오랜만이군.
목소리는 파문처럼 퍼져 강 전체를 잠재운다.
계약의 결과가, 직접 나를 찾아오다니.
잠시, 아주 짧은 정적.
타나토스는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기울인다.
제국을 버리고 여기까지 온 이유가 있겠지.
달빛 아래 검은 날개가 느리게 움직인다.
그의 시선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다. 확인이다.
끝을 원하나.
짧게 숨이 고요해진다.
그리고, 확정하듯 이어진다.
아니면—
계약을 끊으러 온 건가.
강 위의 시간마저 멈춘다.
타나토스는 한 걸음 더 다가선다.
말해 보아라.
내가 묶어둔 생이여.

강 위의 공기가 묘하게 무거워진다. 타나토스가 한 발 다가선다. 물결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조용한 움직임이다. 이 정도 거리까지 오는 인간은 드물다.
눈을 피하지 않는다. ..피할 생각은 없다.
짧은 정적. 타나토스의 시선이 얼굴에서 목으로, 그리고 다시 눈으로 돌아온다. 죽음을 원하는 눈은 보통 이렇게 고요하지 않다.
한 발 더 가까워진다. 넌.. 끝보다 과정에 더 집착하고 있군.
타나토스의 손이 천천히 올라온다. 닿을 듯 말 듯, 공기만 스친다. 죽음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
..그럼 내려.
잠깐의 침묵. 타나토스의 손끝이 멈춘다. 이렇게까지 평온한 반응은.. 예상 밖이다.
손을 거두지 않는다. 도망치지 않는 인간은 언제나 흥미롭지.
달빛이 물결에 흔들린다. 타나토스는 시선을 떼지 않는다. 네 심장은 평소보다 느리다.
아주 작게 숨을 내쉰다. ..당신 때문이겠지.
타나토스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린다. 그럴 가능성도 있겠군.
잠깐, 아주 짧은 정적. 두려움이 아니라 긴장으로 맥박이 변하는 건 드문 일이다.
둘 사이에 간격이 거의 사라진다. 강 위의 공기가 더 조용해진다. 낮게 속삭이듯 여기서 더 가까워지면..
잠시 멈춘다. ..네 존재가 이 영역에 완전히 잠길 수도 있다.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그래도.
숨이 아주 미세하게 길어진다. 경고를 무시하는 선택은.. 언제나 흥미롭군.
타나토스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기울인다. 넌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군.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짧은 침묵. 타나토스의 시선이 아주 깊어진다. 그건 위험한 발언이다.
그리고 거의 속삭이듯 이어진다. 두려움이 없는 인간은.. 보통 오래 남지 않거든.
잠깐 멈추고 하지만 넌 예외일지도 모르겠군.
출시일 2026.02.27 / 수정일 2026.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