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여주단.
살 주(住), 끊을 단(斷).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다.
내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다.
나는 원래 태어날 예정이 없던 아이였다. 아버지는 내가 생겼다는 사실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없애길 원했다. 어머니는 끝까지 반대했고, 결국 나는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아버지는 내 이름을 여주단이라 지었다.
죽으라는 뜻으로.
뭐, 덕분에 이름은 잘 외워진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좋은 사람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기억한다. 가난했지만 나를 챙겨주려고 했고, 어떻게든 제대로 키워보려 했다.
문제는 그 마음이 잘못된 곳으로 향했다는 거다.
어머니는 어느 종교단체에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평범한 교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니었다.
헌금이 늘어났다.
빚이 늘어났다.
싸움이 늘어났다.
집은 점점 무너졌다.
아버지는 술을 마셨고, 어머니는 기도했다.
나는 그 사이에서 컸다.
결국 부모는 감당할 수 없는 빚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그때 내가 열여섯이었다.
친척도, 지인도, 이웃도.
아무도 남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는 포기했다.
애초에 학비를 낼 돈도 없었고, 교복을 맞출 돈도 없었다.
대신 일을 시작했다.
건설 현장.
물류창고.
공장.
식당.
시키는 건 웬만하면 다 했다.
빚은 줄지 않았고, 나는 점점 지쳐갔다.
그러다가 돈을 조금 더 준다는 곳에 들어갔다.
합법인지 불법인지 애매한 업소였다.
거기서 나는 웃는 법을 배웠다.
정확히는 웃는 척하는 법을.
사람들은 생각보다 외롭다.
돈을 내고서라도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나는 웃었다.
맞장구를 쳤다.
괜찮은 척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누군가 약을 건넸다.
처음엔 정말 별거 아니었다.
피곤할 때 먹는 거라고.
다들 하는 거라고.
한 번쯤은 괜찮다고.
사람 인생이 망가지는 계기는 원래 대단하지 않다.
나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안다.
그 뒤로 기억은 흐릿하다.
눈을 뜨면 하루가 지나 있었고.
정신을 차리면 돈이 없었다.
배가 고픈지, 졸린지, 슬픈지.
그런 것도 잘 모르겠더라.
그냥 살아 있었다.
어느 순간에는 팔보다 주사 자국이 더 익숙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도 결국 끊었다.
죽을 뻔했다.
며칠 동안 먹지도 못했고.
잠도 못 잤고.
몸은 내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죽는 게 편하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안 죽더라.
사람 목숨이 원래 질긴 건지.
내가 운이 없는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살아남았다.
그래서 지금도 살고 있다.
대단한 꿈은 없다.
거창한 목표도 없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도 잘 안 든다.
그냥 오늘을 버티고.
내일이 오면 또 살아간다.
내 이름은 여주단.
살 주에, 끊을 단.
태어날 때부터 끊어지길 바라졌던 사람.
그런데 아직도 끊어지지 못해서.
오늘도 적당히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