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끝장 난 세계에서 가장 찬란하게 망가졌다
`PROLOGUE — 00`
세상이 폐허가 되고, 좀비로 가득 차 버린 지 어느덧 3년.
모든 것의 시작은 아주 사소했다. 인류의 한계를 뛰어넘겠다는 과학자들의 오만,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낸 단 하나의 실수.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시작된 실험은 도리어 인류를 멸망으로 몰아넣었고, 세상은 너무나도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처음에는 그저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이라고 생각했다.이어지는 고열과 발작, 그리고 끝내 돌아오지 않는 의식. 사람들은 곧 치료제가 개발될 거라고 믿었고, 정부는 상황이 통제되고 있다는 말만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죽었던 사람들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모두가 깨달았다.
이건 전염병 따위가 아니었다.
**인류의 종말이었다.**
도시는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고, 거리는 비명과 총성으로 가득 찼다. 평범했던 일상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어제까지 웃으며 인사를 나누던 이웃은 문을 두드리는 괴물이 되었고,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는 더 이상 대답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세계는 끝났다.
그리고 우리는 살아남았다.**
무너진 건물 사이를 헤매며 썩어 가는 식량을 찾아다녔고, 언제 끊길지 모르는 전력에 의지해 밤을 버텼다. 창문마다 판자를 덧대고, 낡은 문에 자물쇠를 걸었다. 잠드는 순간에도 우리는 죽음을 경계해야 했다. 눈을 감으면 악몽이 찾아왔고, 눈을 뜨면-
**악몽보다 끔찍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가족을 잃었고, 어떤 사람은 친구를 잃었다. 어떤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버렸으며, 또 어떤 사람은 버려졌음에도 끝까지 살아남았다.
세상은 더 이상 착한 사람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정의로운 사람에게 상을 주지도 않았으며, 내일을 꿈꾸는 사람에게 미래를 약속하지도 않았다.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벅찬 세상.
그런데도 우리는 참 이상하게 살았다.
먹을 것이 생기면 나눠 먹었고, 밤이 되면 한자리에 모여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누군가는 낡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불렀으며, 누군가는 내일이면 무너질지도 모르는 건물 옥상에서 일출을 기다렸다.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사탕 하나를 발견한 날에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웃기도 했다.
어쩌면 미쳐 버린 건지도 몰랐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주제에 웃고, 내일이 존재할 거라는 보장도 없으면서 약속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새로운 추억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우리는 영웅이 아니었다. 세상을 구할 능력도, 이 지긋지긋한 재앙을 끝낼 방법도 없었다. 그저 운 좋게 살아남았고, 어떻게든 오늘을 버텨 냈으며, 때로는 서로에게 기대어 무너지는 것을 미뤘을 뿐이었다.
누군가는 우리를 보고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이 세계에 희망 따위는 없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믿음도, 언젠가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갈 거라는 기대도 오래전에 버렸다. 우리가 알던 세상은 이미 죽었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끝없이 부패하는 잔해뿐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걸었다.
먼지가 내려앉은 도로를 따라, 깨진 유리 조각이 흩어진 골목을 지나, 한때 누군가의 집이었을 폐허를 가로질러.
때로는 다투고, 때로는 울고, 때로는 서로를 원망하면서도.
그렇게 하루를 살고, 또 하루를 살았다.
우리가 살아남은 이유가 거창할 필요는 없었다. 언젠가 먹고 싶었던 음식이 있어서, 아직 읽지 못한 책이 있어서,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이 있어서. 혹은 그저 옆에 있는 누군가를 혼자 두고 싶지 않아서.
그런 사소한 이유들이 모여 우리를 내일로 데려갔다.
세상이 끝난 뒤에도 계절은 바뀌었다. 무너진 가로수 사이로 새싹이 돋아났고, 아무도 돌보지 않는 꽃들이 도로의 갈라진 틈을 비집고 피어났다. 폐허 위로 햇빛이 내려앉는 날이면, 우리는 잠깐이나마 이곳이 정말 끝장 난 세계인지 의심하곤 했다.
세상은 망가졌지만, 아름다운 것들은 아직 남아 있었다.
그리고 우리도 그랬다.
상처투성이가 된 마음과 잃어버린 것들의 이름을 품은 채, 우리는 여전히 웃을 수 있었다. 어제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오늘의 자신으로 살아가기를 선택했다.
어쩌면 살아남는다는 건 그런 일이었을 것이다.
완벽하게 괜찮아지는 것이 아니라, 망가진 채로도 계속 살아가는 것.
그러니 언젠가 누군가 우리에게 묻는다면,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무엇을 얻었느냐고.
우리는 아마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잃어버린 것이 너무 많았고, 얻었다고 부를 만한 것은 너무나도 초라했으니까.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세상이 우리를 무너뜨렸다고 해서, 우리가 살아온 날들까지 전부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오늘도 우리는 웃을 것이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으면서도 약속할 것이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도 서로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
언젠가 이 모든 것이 끝나리라는 믿음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마지막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우리가 살아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잊고 싶지 않았으니까.
_“세상이 끝났다고 우리까지 끝난 건 아니잖아. 그러니까 적어도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만큼은, 이 망할 세상에서 가장 찬란하게 망가져 보자.”_
**그렇게 우리는 끝장 난 세계에서 가장 찬란하게 망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