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이라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으로**
어느 때와 같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에 밝은 달에 비치는 빛나는 눈길에 의존하며 걷고 또 걸었다. 이곳에 온 지도 어느덧 2년 하고 3개월이 더 흘렀으니, 이 정도의 어둠이야 달빛에 의존하지 않고도 거처로 돌아갈 수 있었다.
뒤에서는 나를 따라오는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병사들의 거친 숨소리, 그리고 박자가 어긋나 어찌 보면 엇박이라 할 수 있지만 또 하나의 왈츠를 써내려 갈 수 있을 것 같은 발소리.
모든 것이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나에게는 그마저도 길을 잃지 않고 나아가게 해줄 이정표 같은 것이었다.
귀끝이 시리고 손끝에 감각이 없는 것 같지만, 나는 계속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당신을 만나려면, 이 정도의 추위쯤은 따뜻한 그곳의 봄으로도 느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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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있던 곳은 이렇게 뼈가 시리도록 춥고, 누군가는 동상에 걸려 죽고, 병사들을 잡아가려 온 세이렌마저도 얼어버릴 정도로 추운 곳은 아니었다.
그곳은 가끔은 서늘하고, 당신이 느끼기에는 추울 수 있으나 비교적 온난하고, 여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름 따뜻한 날씨를 가진, 사계절의 조화를 가진 아름답고도 신비로운 곳이었다.
물론 그곳에서도 당신의 온기보다 따뜻하고 부드럽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이곳에 온 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다. 당시 나는 혼기가 이미 찬 상태였고,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처음 보는 여성과 결혼하게 될 운명이었다.
가문에서는 나에게 북쪽 지방의 이제 세계에 마지막으로 남은, 그렇지만 인류에게는 가장 해가 되고, 언젠가는 인류를 멸망시킬지도 모르는 괴수를 토벌하고 오면, 강제적으로 혼인시키지 않겠다고 했다.
갈 생각은 없었다.
당연하게도, 누가 제 부하들과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 괴수를 죽이러 가겠는가.
그것도 이리 뼈가 시리다 못해 산 채로 얼어버릴 곳에?
그렇지만, 당신이 하필 그날 우리 가문에 찾아와서.
제국 황실의 기사단장의 자리까지 오른 형에 비하면 실패작이라고 불리던 내게.
그리 따뜻한 표정으로, 어떤 악기와 선율로도 감히 따라 하지도, 담아내지도 못할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주던 당신 때문에.
당신 때문에, 이곳에 오게 된 것이다.
물론 군말 없이 간 것은 아니다. 내가 간 사이에 당신이 혼기가 차고, 그래서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게 된다면, 나는 더 이상 살아 있을 의미가 없으니까. 그래서 조건을 걸었다. 그곳으로 가는 대신에, 내가 돌아오는 그 즉시 당신과 혼인하게 해달라고. 내가, 오직 나만이, 당신의 곁에 남을 수 있게 해달라고. 가문은 내가 돌아오지 못할 줄 알았는지 흔쾌히 수락했다. 당신의 가문에서도 기꺼이 받아들였고. 아마, 그건 나라는 인물 때문이 아니라, 당시 제국에서 황실 다음으로 명망이 높던 우리 가문이, 자신들의 딸과 혼인 계약을 맺겠다 하니, 아마 당신의 아비도 눈이 돌아서 수락한 것이겠지.
그렇게 오게 된 이곳은 예상보다 더, 시리고도 고통스러웠다.
처음에는 병사들이 적응을 못 해서 쉽게 동상에 걸리거나, 얼어 죽는 일이 빈번했다. 나 또한 두 달 내내 지독한 감기를 앓으며 나아갔으니,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옆에서 얼어 죽는 동료를 보며 제대로 장례마저 치르지 못하고 싸워야 했던 부하들, 그리고 신뢰하던 놈들을 잃은 나까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가장 아팠던 건, 돌아가기 전까지는 당신을 만날 수 없다는 거였다.
사실 알고 있었다. 굳이 다른 나라에서도 손쓰지 못했던 그 괴수를, 황실 기사단장인 형이 아닌 그저 황실 기사단의 제3소속 대장이었던 나를 보낸 그 이유를, 내가 당신과 혼인을 대가로 가겠다 했을 때 흔쾌히 수락한 이유를.
가문에서는 처음부터 나를 버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형보다 뛰어나지 못해, 그렇다고 동등한 힘이 있는 것도 아니야.
나는, 누군가에게는 뛰어나고 위대한 사람일지 몰라도, 내가 한평생을 나고 자랐던 곳에서는 실패작으로밖에 분류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오기가 생겼다. 일부러, 정말 내가 그 괴수를 토벌하고 온다면, 내가 형보다 더 뛰어난 공로를 세울 수 있으니까, 그러면 그제야 비로소 내가 인정받을 수 있는 거니까.
당시에는 이런 이유로 승낙했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니 역시 7할은 당신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은 이유로 같은 선택을 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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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늘도 편지가 왔다.
누군지도, 누가 보낸 건지도 적혀 있지 않았지만, 장난스러운 말투와 글씨체, 그리고 편지에 옅게 묻어나 있는 당신의 그 향기까지.
바보같이 웃음이 나와서, 그날은 하루 종일 실실 웃으며 부하들을 훈련하고, 북부로의 진출을 방해하는 적군들을 죽이고, 피 묻은 얼굴로 또 그 편지가 생각나 헤실헤실 웃는 나를 보며, 사카유시가 드디어 내가 미쳤나 싶은 표정으로 바라보는데도 쥐어박지 않았다.
얼른 끝내고 당신에게 가야 하는데, 당신이 쓴 그 몇 줄이 눈꺼풀 너머로 아른거려 미치겠다.
돌아가면 편지를 쓴 그 손가락에 입 맞춰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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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나 소우시로의 일기, 56장, 61장, 88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