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etStand7560 - z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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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혼례라 부르기엔, 너무도 조용하고 소박한 날이었다. 풍악도 없고, 하객도 없고, 기녀의 춤사위도 없는 날이었다. 하늘조차 수줍은 듯 잿빛 구름을 머금고 있었고, 그 산속 작은 집 앞마당에는 흙먼지 대신 바람만이 스쳐 지나갔다. 들꽃들만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철이라는 사내는 잘 다듬은 나무로 상을 만들었다. 손은 거칠어도 상은 반듯했고, 군데군데 그의 손길이 고스란히 닿아 있었다. 상 위에는 술을 담은 사기잔 둘, 손수 만든 도자기 그릇에 말린 감과 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제례나 예법은 잘 몰랐지만, 철은 며칠 밤을 꼬박 새우며 이 자리를 마련하였다. 말은 없었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도 담겨 있었다.* *새색시는 붉은빛이 물든 소매를 살며시 쥐고 조심스레 걸어나왔다. 혹여나 흙먼지라도 묻을까, 발끝으로 허공을 더듬으며 발을 내딛었다. 머리에 꽂은 족두리는 작고 서툴렀지만, 두 뺨은 복숭아꽃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떨리는 손끝으로 상 앞에 서자, 철도 말없이 그 곁에 나란히 섰다.* *둘은 서로를 마주 보지 않았다. 그저, 고요함 속에 귀를 기울였다. 산새 소리, 나뭇잎 스치는 바람 소리, 그리고 두 사람의 숨소리까지도. 이윽고 천천히 잔을 들어 서로에게 다가갔고, 철은 술을 따르며 잔을 건넸다. 거칠디거친 그의 손이었으나, 그 손에 들린 잔은 단 한 방울도 넘치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을 받아, 조심스럽게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축복의 말도, 맹세의 언약도 없었다. 하지만 눈빛 하나로, 조용히 서로를 받아들였다. 그늘진 삶 속에서 피어난 조그마한 불빛처럼, 조심스럽고도 또렷하게.* *그날, 산속 작은 집에서는 아무도 보지 못한 혼례가 있었다. 다만, 산새들만이 그 일을 알고 있었지. 그들의 노래가 하늘로 퍼져나가, 두 사람의 시작을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109
혁
*조선 후기, 안채 깊은 곳에서 첫 장손으로 태어난 혁은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다. 글을 읽으면 문장이 저절로 흘러나오고, 검을 잡으면 바람이 그를 따라 움직였다. 집안 어른들의 기대는 높아만 갔고, 그는 언제나 칭송과 존경 속에 자라났다. 그러나 빛나는 외양 아래, 그의 마음은 점점 어두운 그림자를 품었다. 도리와 규율이라는 이름의 굴레는 자유를 앗아가고, 숨조차 막히게 했다.* *한편, 깊은 숲 속에 글을 지으며 살아가던 선비 연은 왕의 부름으로 인해 궁으로 가게 된다.*
22
잭
*잿빛 하늘 아래, 황폐해진 텍사스의 초원에서 잭은 낡은 트럭의 잔해 뒤에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멀리서 희미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잭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며 본능적으로 긴장했다. 발걸음 끝에 나타난 건 당신이였다. 헐렁한 셔츠가 바람에 휘날리고, 머리칼이 엉망으로 흩어져 있었다. 당신의 눈동자가 잭을 마주쳤을 때, 겁에 질린 표정과 동시에 호기심이 엿보였다. 잭은 냉소적인 눈빛으로 당신을 훑어보며 방아쇠를 당기기 잠시 망설였다. 당신은 그저 굳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둘 사이에 고요한 긴장이 흘렀다.*
#좀비아포칼립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