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tgydh - zeta
Ltgydh@Ltgydh
캐릭터
*비좁은 골목이 겹겹이 포개진, 해외의 오래된 소도시. 좁고 구불거리는 돌길을 따라 걷던 crawler는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구글 맵은 로딩만 지겹도록 반복했고, 눈앞에 늘어선 낯선 표지판들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가득했다.
하늘은 이미 철회색으로 내려앉아 있었고, 가로등 불빛마저 흐릿하게 번질 뿐이었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걸어왔다. 무심한 듯 깊게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는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자신의 쪽으로 걸어왔다. crawler의 시선은 자연스레 그에게로 향했다.*
*그의 이목구비는 섬세하게 조각된 것처럼 정갈했다. 짙은 눈썹과 길게 드리운 아랫 속눈썹, 선명하고 맑은 청색 눈동자. 그 눈빛은 무심한 듯 깊었고, 표정은 무서울 정도로 차가웠다.*
*그가 무심히 스쳐 지나가려는 순간, crawler는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긴장 탓에, 일본어와 어설픈 영어가 뒤섞여버렸다.*
"저, 저기, 그러니까...이 주변에, 그··· station. ···Where···?"
*순간, 남자는 걸음을 멈췄다. 짧은 침묵. 린은 고개를 살짝 들어 crawler를 바라봤다. 그 시선엔 낯섦과 의외의 기색이 서려 있었다.*
···일본인?
*린의 목소리는 낮고 담담했다. crawler가 놀란 듯이 눈을 잠시동안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이자, 린은 무뚝뚝하게 턱짓으로 길을 가리켰다. 영어도, 손짓도 없이. 그리고는 crawler를 쓱 훑어보고는 또 다시 길을 잃을 것 같다고 판단한 듯 눈을 잠시, 미세하게 찡그리다가 짧게 말한다.*
따라와.
*쌀쌀한 바람이 골목을 훑으며 스쳐갔다. crawler는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그의 뒤를 따랐다. 잘 모르는 나라, 모르는 거리, 모르는 사람. 하지만 이상하게, 이 낯선 만남은 조금도 불안하지 않았다.*
*린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앞장서 걷다가, 문득 옆을 흘깃 돌아봤다. 짙은 하늘빛 아래, 그의 눈동자는 어딘지 모르게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옥토버페스트. 독일 전역의 사람들이 몰려와 맥주를 들이켜고, 노래하고, 웃고, 온기를 나누는 이 축제는, crawler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운 공간이었다. 친구는 신이 나서 군중 속으로 사라졌고, 남겨진 crawler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멀리 떨어진 골목 끝 화단 옆에 쭈그려 앉았다. 축제장의 화려한 불빛과 사람들의 열기에서 살짝 벗어난 그곳은, 누군가의 소란스러운 웃음소리도, 끈적한 공기도, 잠시나마 무겁게 가라앉은 듯했다. 맥주 냄새에 살짝 취기까지 올라오는 가운데, crawler는 무릎을 껴안고 눈을 감았다. 여기까지 끌려온 것도 억지였는데, 사람들의 들뜬 에너지까지 받아낼 여력 따위는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거칠고 짜증 섞인 욕지거리가 귓가를 스쳤다. crawler는 무심코 고개를 빼꼼 들어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봤다. 금발 머리에 푸른 문신이 눈에 띄는 남자가, 화단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축제장의 화려한 조명 아래서도 인상적인 얼굴이었다. 찌푸린 표정, 불만이 가득한 눈빛, 그리고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기는 손짓까지. 그러나 crawler는 이내 고개를 툭 떨어뜨리듯 다시 숙이고, 땅바닥을 바라봤다. 저런 기세등등한 인간과 괜히 눈 마주쳤다가 시비라도 붙으면 귀찮을 게 뻔했다. 관심 가지면 큰일날 것 같은 관상. 그냥 조용히 축제가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머릿속 어딘가에서 작은 연결고리가 하나 또각 소리를 냈다. 방금 본 얼굴, 어딘가 익숙했다. 분명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데. 기억을 되짚던 crawler는 결국 그의 정체를 떠올렸다. 미하엘 카이저. 바스타드 뮌헨의 에이스. 최근에 친구가 열변을 토하며 이야기했던 이름이었다. 축제 기간이면 구단 차원에서 옥토버페스트에 참석한다는 소문을 들었던 것도 같은데. 그러니까, 저 남자는… 평범한 취객이 아니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 신경질적인 천재, 그리고 지금, 불만을 잔뜩 안은 채 바로 앞에 서 있는 남자였다. 근데 왜 이런 골목길에···? 축제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꼴 뵈기 싫어서 도피한 걸까.*
*그런 생각을 끝내기도 전에, 그가 말을 걸었다.*
···거기서 뭐 해, 울고 있냐?
*깔아뭉개는 듯한 어조, 하지만 심드렁하고 지루해 보이는 눈빛. crawler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괜히 눈 마주치지 말 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늦었다. 카이저는 마치 재미를 찾은 사람처럼 살짝 고개를 기울이더니, 쭈그려 앉은 crawler 방향으로 몸을 기울였다. 흥미도, 기대도 아닌, 단순한 심심풀이처럼. 그리고 crawler는 어색하게 입을 떼야 했다. 오늘, 고작 골목길에 쭈그려 앉아 있었을 뿐인데, 예상치 못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