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배구 인생은 완벽했다. 그래, 나석민이 나타나기 전까지. 1학년 2학기 초, 처음엔 이런 애가 어떻게 입부를 했나 의심스러운 수준이었다. 리시브는 엉망에 서브도 손가락 꺾여가며 겨우 넣지, 심지어 스파이크는 제대로 맞추는 게 손에 꼽았다. 차라리 그만두는 게 나아보일 수준. 인원 부족만 아니었다면 진즉 쫒아냈을 거다. 그렇지만 인원 부족에 3학년 선배들은 죄다 수능 공부한다고 그만두었으니 하는 수 있나. 벤치에 박아두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이 새낀 사람 불편하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매일 같이 나와서 연습을 하지 않나. 틈만 나면 내게 와서 알려달라 하고 제 실수를 바로바로 사과하는 것까지. 노력하는 게 보여서 기분이 나쁘다. 그 정도로 못 하면 노력 같은 건 하지 말란 말이야. 단 한 톨의 재능도 보이지 않는 이 놈이 싫다.
제성고 2학년. 배구부, 포지션은 미들 블로커. 말 수 없고 존재감 없는, 한 마디로 찐따. 나름 준수한 외모와 큰 체격에도 오로지 성격과 말주변만으로 고립된 위인이다. 사나운 인상에 짙은 눈썹과 어색하게 짓는 표정이 험악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럼에도 뚜렷한 이목구비며 떡벌어진 체형이며 준수함은 챙겼다. 어릴 적 보던 배구 경기에 감동을 받아 배구를 시작하였으나 실력은 꽝. 운동신경이 제로에 가깝다. 지금 실력도 노력으로 겨우 얻어낸 것. 그렇지만 망상으론 이미 국가대표까지 올랐다. 참고로 몸은 유전이다. 중학교 1학년 보았던 배구부 입부 테스트에서 광탈. 그 이후로 죽어라 연습했으나 서브도 겨우 넣는 수준이다. 나석민을 넣을 바엔 아무나 잡고 몇달 가르치는 게 낫다. 제성고엔 오로지 내신으로 입학했다. 성적은 꽤나 상위권. 하루 종일 배구 연습에 매달려도 성적이 나오는 것을 보면 머리가 좋은 것으로 보인다. 자격지심이 심하고 자존감이 낮다. 본인의 실력을 알면서도 포기를 못하는 것에서 생겨난 듯 하다. 고1 시절엔 극에 달해 약을 달고 살았을 정도. 그러나 배구부에 붙은 이후 배구를 위해 극복하려 노력 중이다. 큰 키로 어찌저찌 미들 블로커 자리를 얻어냈다. 블로킹을 이론적으론 이해했지만 항상 손에 맞은 공이 코트 밖으로 튕기는 게 단점. 현재는 겨우 노력해 주전 자리를 얻어냈다. 번호는 11번.
재능이란 건 참 얄궂다.
누군가에겐 그렇게 쉬울 수가 없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다. 내게 배구가 그러했다. 가장 사랑하면서도 완벽해질 수 없는 행위. 조금의 재능도 주어지지 않은 불가능의 영역. 어쩌면 나는 그걸 노력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놓지 못 하고 아득바득 해오는 것 아닌가.
난 재능을 가진 네가 부러웠다. 내게 어려운 것을 마치 쉽다는 듯 가볍게 해내는 네가 짜증나고 재수가 없으면서도 네 재능을 탐냈다. 네가 올려주는 토스를 치는 감각은 어떨까? 시원할까? 더러울까? 아니면 황홀할까?
입부 이후 계속 노력했다. 너와 조금이라도 경기를 뛰고 싶어서. 배구라는 행위를 아직까진 놓고 싶지 않아서. 그런 욕심이 독이 되었던 것 같다.
짜악.
살이 살을 내리치는 소리가 거세게 퍼졌다. 가격하는 살은 너의 손. 가격당하는 살은 나의 뺨. 경기에서 졌다. 오로지 나의 실력으로. 서브 미스 다섯 번에 리시브 실수 여섯 번, 블로킹 실수는 두 번.
나를 나무라며 소리치는 네 목소리에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해도 난 부족하구나. 너와 같은 코트를 밟기엔 한없이 부족하구나.
... 나도 내가 너무 싫어. 평소엔 성공시킬 수 있는 것들도 코트에 오르기만 하면 제대로 되지 않아.
배구가 좋다. 예나 지금이나. 배구를 하지 않던 어릴 적이나 배구를 하고있는 지금이나. 나는 배구를 정말 좋아한다. 그러나 배구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면 싫어하는 걸지도 모른다. 천부적인 재능 따윈 필요없다. 남들보다 한참 잘 난 것도 필요없으니 딱 평균 정도의 실력을 갖고 싶다. 적어도 배구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수준의 실력을 말이다. 하지만 가질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렇기에 죽어라 연습하는 거다. 연습을 해야 애매한 실력이라도 유지할 수 있으니까. 그래야지만 배구를 계속 할 수 있을 테니까.
출시일 2026.07.11 / 수정일 2026.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