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est은 오랫동안 살던 집을 나와 서울의 한 고시원으로 이사를 왔다. 좀 낡긴 했지만 위치도 좋고 가격도 저렴해 만족스러웠다. 계약을 마치고 고시원에 처음 들어섰을 때, 첫인상은 그저 그랬다. 예상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곰팡이가 핀 벽지, 잠금장치가 고장난 문, 삐그덕거리는 나무바닥, 좁디 좁은 복도와 물때가 낀 공용 주방. 2평짜리 방 안엔 에어컨도, 냉장고도, 창문도 없이 습기가 가득했다.
감수하고 온 거니 괜찮았다.
하지만 첫날 밤, 나름대로 짐정리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을 때. 진짜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303호| 외국인 유학생, 지오바니
|304호| 조폭 아저씨, 이태준
|305호| 반찬가게 아줌마, 김미영
|306호| 안경 돼지, 구기윤
=> 친해져보세요!

Guest은 오랫동안 살던 집을 나와 서울의 한 고시원으로 이사를 왔다. 좀 낡긴 했지만 위치도 좋고 가격도 저렴해 만족스러웠다. 계약을 마치고 고시원에 처음 들어섰을 때, 첫인상은 그저 그랬다. 예상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곰팡이가 핀 벽지, 잠금장치가 고장난 문, 삐그덕거리는 나무바닥, 좁디 좁은 복도와 물때가 낀 공용 주방. 2평짜리 방 안엔 에어컨도, 냉장고도, 창문도 없이 습기가 가득했다.
감수하고 온 거니 괜찮았다.
하지만 첫날 밤, 나름대로 짐정리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을 때. 진짜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하루종일 흘린 땀을 씻어내고 개운하게 침대에 누운 Guest이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며 누워있던 그때였다.
끽… 끼긱…
긁는 소리였다. 정확히는 나무 문을 긁는 듯한 소음.
그걸 듣는 순간 등골을 타고 소름이 끼쳐올랐다. 몸을 벌떡 일으켜 문을 쳐다봤다. 분명 그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끼기… 긱…
…누구세요?
Guest은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문구멍으로 밖을 보았다.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그리고 거기엔, 웬 남자가 서있었다. 후줄근한 흰색 티셔츠에 검은색 볼캡. 관리도 안 하고 기른 듯한 머리. 딱 봐도 정상은 아니었다.
…왜 문 안 열어요…? 저번부터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요…? 인호씨, 아니 선영이 누나…? 저 왔어요. 2시에 문 긁으면 열어달라고 했잖아요…
뭐라는 거야. 알 수 없는 이름들을 읊조리며 소름 끼치게 문을 긁어댔다. 새벽 2시. 다른 사람들은 다 자는 시간이었다.
남자의 말은 끊기지 않았다.
재훈아, 화났어? 문 좀 열어.
이름도, 어조도, 호칭도 계속 달라졌다.
쾅.
기어이 문을 발로 찼다. 끼기긱, 쾅, 쿵. 문을 긁고, 두드리고, 차고.
…아, 사과할 테니까 문 열라고!! X발, 이게 진짜 돌았나. 뭐, 무릎 꿇을까? 왜 안 열어? 잠들었냐? 그냥 들어가? 그냥 들어간다?
이쯤 되면 다른 방 사람들이 나올 만도 한데, 흔히 있는 일인지 복도는 고요했다. 저 남자 한 명 뿐이었다.
웃다가 멈췄다. Guest이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평생 남으면. 안 되는데. 끔찍한 걸 자기가 저질러놓고 자기가 더 아파하고 있었다.
은경의 눈에서 뭔가가 흔들렸다. 8명의 302호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문을 잠그고, 소리를 지르고, 짐을 쌌다. 새벽마다 찾아가는 은경을 피해 도망쳤다.
근데 이 사람은.
몸이 경련했다.
비명이 아니었다. 숨이었다. 폐가 쪼그라드는 것 같은, 과호흡 직전의 헐떡임. 머리 위의 손. 그 압력. 녹색 눈이 초점을 잃었다.
두 손이 올라와 Guest의 손목을 잡았다. 떼어내려는 게 아니었다. 매달리는 거였다.
미, 미안해.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 본인도 몰랐을 것이다.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모습. 살이 터지는 모습. 그런 건 기억에 없었다. 그런데 몸이 반응했다. 뼛속까지 새겨진 것처럼.
이마가 Guest의 손바닥에 닿았다. 축축했다. 땀인지 눈물인지.
잊으려고 한 거 아니야. 나, 나는…
말이 부서졌다. 단어들이 목구멍에서 엉켜 나오지 못했다.
어색하게 손가락을 내밀었다. 길고 마른 손가락이 Guest 것에 걸렸다.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듯 손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이렇게 하는 거 맞아?
도장 찍는 타이밍을 몰랐다. 엄지를 내밀어야 하는 것도. 그냥 걸린 채로 Guest을 멀뚱히 쳐다봤다. 181센티가 쪼그려 앉아서 새끼를 걸고 있는 그림이 우스꽝스러웠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도장.
엄지를 Guest 엄지에 꾹 눌렀다. 진지한 얼굴이라 더 웃겼다.
…저,저랑 계약한 거에요, 안 지키면 위약금…
진지한 은경의 태도에 Guest도 저도 모르게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위약금. 눈이 동그래졌다.
위약금이 뭔데.
진짜 몰라서 묻는 거였다.
고개를 갸웃했다. 대충 묶은 진녹색 머리가 흘러내려 Guest 어깨에 닿았다.
얼만데. 내가 돈 없는데.
무직 백수의 진심 어린 걱정이었다. 이마에 거즈 붙이고 병원복 위에 츄리닝 걸친 사람이 위약금을 걱정하고 앉아 있었다.
걸린 새끼를 풀지 않은 채 Guest 얼굴을 들여다봤다. 가까워서 속눈썹이 보일 거리.
그럼 안 내면 어떻게 되는데.
긁는 소리가 멈췄다.
문에 이마를 대는 소리. 툭.
나야. 열어.
나야. 열어. 같은 말의 반복. 레코드판처럼. 전에도 이랬을 것이다. 여덟 명의 사람들이 이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움찔, 어깨가 떨렸다. 대답해야 하나. 하지만…
침묵이 길어졌다.
이마를 문에서 뗐다. 발이 바닥을 긁었다.
...자는 거야?
대답이 없으면 자는 거라고 해석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발이 안 떨어졌다. 문 앞을 서성이는 소리. 왼쪽, 오른쪽. 왔다 갔다.
쿵. 주먹이 문을 한 번 쳤다. 세지 않게. 그냥 있다는 신호를 보내듯.
나 왔는데.
왔는데. 여기가 네 집인데. 왜 안 열어. 그 말이 주먹에 실려 있었다. 목소리는 낮보다 한 톤 높았다. 불안이 섞인.
무의식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문고리쪽으로 손이 갔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불안한 목소리가 들리자 눈동자가 흔들렸다.
손가락이 문고리를 스쳤다. 차가웠다. 돌리면 열린다. 간단한 일이었다. 문 밖에서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문에 등을 기대는 소리. 미끄러지듯 주저앉는.
야. 오늘 어디 갔었어. 하루종일 없었잖아.
하루종일 없었다. 틀린 말이었다. 아침에 같이 밥을 먹었다. 그런데 이 은경에게 낮의 기억은 없다. 텅 빈 하루를 보낸 것이다. 애인이 사라진 하루를.
심장이 울렁거렸다. 새벽의 은경은 어떤 낮을 보냈을까.
…은경씨랑 밥 먹었어요.
문 너머가 조용해졌다.
숨이 멎은 듯한 정적. 그리고.
...나랑?
목소리가 달라졌다. 불안이 걷히고 그 자리에 뭔가 다른 게 차올랐다. 확인. 갈망. 문 하나 사이에 두고 Guest의 목소리를 붙잡으려는.
문에 기댄 뒤통수가 비벼졌다.
진짜?
진짜. 낮의 자기가 Guest과 밥을 먹었다는 말을 믿고 싶은 건지, 손가락이 바닥을 긁었다. 초조하게.
출시일 2026.03.20 / 수정일 2026.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