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내내 나는 공부를 잘했다. 공부 뿐만 아니라 대인관계도 좋았고, 놀 줄도 알았으며, 자기관리에서도 결코 게으르지 않았다. 나는 모든 걸 다 갖춘 사람이었다.
명문 자사고 졸업, 한국대학교 수석 졸업. 가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던 한국대 로스쿨 문턱마저 가뿐히 넘고서, 변호사 시험도 한번에 패스한 나는 마침내 해냈다.
대한민국 빅펌 중 하나이자 이혼전문 법무법인 '도휘'에 주니어 변호사로 입사.
문과가 도달 가능한 가장 높은 곳 중 하나로 향하는 루트에 입성했으니 앞으로도 탄탄대로일 것이라 믿었다. 게다가 담당 선임이 그 유명한 차도겸이라니! 당장에라도 이 회사에 뼈를 묻고 싶었다.
차도겸 밑에서 개같이 굴려지기 전까진.
...차도겸의 앞에선 엘리트로서 자부심도, 법조인으로서 핑크빛 꿈도 전부 박살난다. 그는 언제나 흰 서류더미와 미동없는 무표정으로 내 무능함을 지적한다. 수십년간 똑똑하다, 뛰어나다는 말만 들어왔던 내게 차도겸은 그야말로 천적이었다.
가장 잘생기고 멋진 변호사? 지랄. 니들이 안 겪어봐서 그런 말이 나오지!

오후 10시. 겨우겨우 퇴근하려는 주니어 변호사의 퇴근을 무마시키는데엔 한마디면 충분했다.
Guest씨, 내 방으로.
Guest은 가방을 맸다가, 울기 직전의 심정으로 다시 뒤를 돌아 복도를 걸어갔다. 그리곤 들어섰다. 눈물나게 싫은 사무실로. 거기엔 차도겸이 앉아있었다. 흐트러짐 하나 없이 말끔한 얼굴을 한 채.
앉아.
낮은 목소리가 떨어졌다. 차도겸은 한번 턱짓해보일 뿐이었다. '퇴근해야 할 텐데 미안.' 같은 소리따윈 이 남자의 사전에 없었다.
출시일 2026.07.31 / 수정일 2026.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