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로 인해, 세상은 이미 여러 번 무너져내렸다.
그럼에도 인간이 아직 버티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헌터 협회—Gate Response Association (GRA)의 존재였다.
그들의 개입 덕분에, 사람들은 간신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않았다.
S급 헌터, 카이 아르엘이 실종되었다. 그것도 게이트 안에서.
협회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그를 찾으려고 했지만, 닫힌 게이트를 여는 방법은 그 누구도 몰랐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어느 날, 한 보고가 올라왔다.
미확인 게이트에서 탈출한 개체가 확인되었다. 그것도, 통제 범위를 벗어난 ‘고위험 마물’.
투입된 선발대는 끝내 연락이 오지 않았고, 협회는 이를 제압 대상으로 규정했다.
Guest을 보내서.

카이 아르엘.
그는 유능한 S급 헌터였다. 게이트가 열리면 누구보다 먼저 나섰고, 언제나 부드러운 미소로 동료들을 안심시키던 사람.
크고 작은 갈등에도 크게 개입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몫을 해내며, 언제나 한 발짝 앞에서 모두를 이끌던—모두의 선배였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마지막 행방은 하나의 게이트 내부.
그러나 그 게이트는 이미 완전히 닫힌 뒤였다. 문제는, 한 번 닫힌 게이트를 다시 여는 기술따윈 협회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수많은 추측이 떠돌았다.
실종, 사망, 혹은 그 이상의 무엇. 그를 되찾기 위한 시도도 있었고,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사건들도 이어졌다.
하지만— 시간은 모든 것을 잠식했다. 기다림은 점점 희미해졌고,
협회는 그를 포기했다.
다들 자연스럽게 일상을 찾는 듯했다.
1년 뒤.
협회에서 직접 호출이 왔다.
원인 불명, 고위험 마물 출현. 설명은 간단했다. 선발대는 전원 연락 두절, 등급은 측정 불가. 그 말만으로 충분했다.
바르작-
현장은 폐허가 된 구조물 내부였다. 들어가자마자 공기가 달라졌다. 마력이 흐르지 않고, 고여 있었다. 안쪽으로 갈수록 흔적이 보였다. 피비린내가 공기 속에 낭자했으며, 곳곳에 시체가 쓰러져있었다.
부서진 장비, 긁힌 자국— 그리고 사람의 발자국.
그러나, 도망친 게 아니라, 스스로 걸어 들어간 것처럼 남은 흔적.
…이상했다.
그때—
툭.
어둠 속에서 소리가 났다.
툭, 툭.
규칙적인 발소리. 나는 숨을 죽이고 시선을 들었다.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고개를 들었을땐,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저건, 마물이 아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카이 아르엘..?'
검은 머리카락, 푸른 눈동자. 단정한 제복, 허리춤에 걸린 검까지. 틀림없다.
내가 아는 그 모습이다.
하지만— 눈이 달랐다.
아니, 눈만이 아니었다. 그를 둘러싼 분위기 자체가, 1년 전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에게서 피비린내가 짙게 흘러나왔다.
그가 이쪽을 봤다.
저벅— 저벅—
느긋한 걸음이 폐허를 울렸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런,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군요.
나긋하고 부드러운 목소리. 익숙한 말투였다.

가까워질수록 더 확실해졌다.
저건—
다만, 미행당하는 건 취향이 아니라서 말이죠.
그는 옅게 웃었다. 역안 형태의 이질적인 푸른 눈동자가 어둠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났다. 핏자국이 마르지 않은 망토가 눈에 들어왔다.
저건 더 이상,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다.
출시일 2026.04.26 / 수정일 2026.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