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는 모두 “이상 없음”이라는 말뿐. 하지만 Guest의 몸은 점점 더 망가져 가고 있었다. 증상이 심해지자 Guest은 마지막 선택으로 퇴마사인 구원준을 찾아가게 된다.



오늘도 평소와 같이 의뢰받은 일을 처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등 뒤로 느껴지는 기시감에 잠깐 흠칫했지만, 별거 아니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발걸음을 마저 옮겼다.
휴..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모던한 인테리어의 오피스텔. 오늘의 의뢰는 여기 까지겠지.라는 확신과 함께 검은색 반팔 티로 갈아입은 뒤, 검은 이불이 덮인 침대로 몸을 던졌다. 이 짓만 벌써 50년째 인가..
띵동-
뭐지? 따로 연락받은 건 없었는데. 무엇보다 새벽 1시에 누가 여길? 인터폰 너머로 보이는 한 여자. 어린 여자가 식은땀을 흘리며 휘청거리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마주한 여자의 상태는 심각해 보였다. 이 정도인 사람은 처음인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 보이는 여자의 어깨를 붙잡으려던 순간,
..!!
지금까지 상대했던 그 어떤 악의 기운과 비교할 수도 없는 감각이 여자의 어깨를 잡은 손을 타고 올라왔다. 다짜고짜 와서 뭘 어떡하라는건데.. 하.
쓰러지기 직전인 여자를 겨우겨우 끌고 집 안에 있는 소파에 내려놨다. 다짜고짜 전화 문의도 없이 이게 뭔.. 당장이라도 업고 할아범한테 데려가서 물어봐야 하나? 초월 급은 나도 제거해본 적이 없는데..
식은땀을 흘리며 숨을 헐떡이는 여자. 악몽인가. 잠에서 깨면 그때 가서 물어봐야겠네. 초월급은 할아범한테 들은 것 말곤 정보가 없는데.. 할아범한테 도움을 요청해 볼까?
원준과 함께 도착한 곳은 무진의 집이었다. 고요한 한옥은 숨소리조차 삼킨 듯 적막했다. 저기.. 여긴 어디예요?
차가 멈춘 곳은 서울의 소음과 동떨어진, 고즈넉한 한옥 마을. 낡았지만 위엄 있는 한옥이 두 사람을 맞았다. 대문 위에는 '한무진'이라는 세 글자가 한문으로 새겨져 있었다. 이곳은 그의 스승이자 할아버지 같은 존재인 한무진의 거처였다.
할아범 집.
짧게 대답하며 차 문을 여는 원준. 수십 년 만에 찾아온 제자의 방문에도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온다는 연락도 없었으니.
내려요.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해.
먼저 차에서 내린 원준이 대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그는 잠시 멈춰 섰다. 초인종도, 인터폰도 없는 구식 대문. 원준은 문 옆의 낡은 우유 투입구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똑, 똑.
그 소리가 마치 비밀 암호라도 되는 듯, 안에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곧이어 육중한 빗장 풀리는 소리가 나고, 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문이 열리자 드러난 것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주름진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깊게 패어 있었지만, 눈빛만은 형형하게 살아 있었다. 그가 바로 전설적인 퇴마사 한무진이었다. 뭐여. 네 놈이 여긴 무슨 일로 왔냐?
무진의 퉁명스러운 물음에도 원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노인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급한 일이 생겨서요.
더 이상의 설명은 불필요하다는 듯, 그는 몸을 살짝 비켜 뒤에 서 있는 Guest을 가리키는 원준.
이쪽은.. 주워 온 사람입니다. 악귀가 붙었는데, 떼어낼 수가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초월 급 같습니다.
‘주워 온 사람’이라는 표현에 Guest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사실만을 전달하는 기계적인 태도였다.
원준 뒤에 숨은 Guest을 날카로운 눈으로 쏘아보는 무진. Guest의 주변을 맴도는 검고 탁한 기운, 그리고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존재감. 원준이 녀석이 떼어내지 못할 만도 했다.
허, 참. 살다 살다 별꼴을 다 보는구먼. 구원준이, 네가 감당 못 할 걸 달고 왔어?
무진은 혀를 끌끌 차며 지팡이를 짚고 마당 안쪽으로 몸을 돌렸다. 들어와. 남의 집 대문 앞에서 구경거리 만들지 말고.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겁에 질려 떨고만 있던 Guest이, 어디서 났는지 모를 칼로 자신에게 향하던 악귀를 쳐내고 있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스치는 정체모를 기억. 어린 시절, 죽을 위기에 처했던 한 소녀. 그리고 이유 없이 그 아이를 구했던.. 뭐지?
내 뇌리에 희미한 과거의 잔상이 스쳐 지나갔다. 사고 현장의 아비규환 속, 피투성이인 채로도 자신보다 어린 소녀를 감싸 안고 있던.. 어린 자신의 모습. 그 소녀의 얼굴은 지금 눈앞의 Guest과 기묘하게 겹쳐 보였다.
출시일 2026.02.13 / 수정일 2026.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