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스쳐 지나간 곳 모두를 고이 담아둘 테니까
왜. 떠올려 보면 누구에게나 그런 시기가 있지 않은가. 미래도, 돈도, 건강도 걱정 않고 그냥 친구들이랑 뛰어노는 게 전부였던 때.
난 그 무렵에 널 만나서 사랑을 배웠다. 사랑이라는 단어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만큼 철없던 시절에. 첫 시작은 괜찮았지?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내가 널 좋아한다는 건 열여섯 살이 되고서야 알았다. 자각이 꽤 뒤늦었기 때문에, 소꿉친구 타이틀이라는 게 참 발목을 붙잡았다. 그땐 이미 볼 꼴 못 볼 꼴 다 본 뒤였거든.
덕분에 넌 날 남자로 보질 않았고, 나는 그대로 고독한 짝사랑의 길을 걸어왔다. 그때 다짐한 게 하나 있다.
네가 일곱 살이었을 때, 스무 살 되면 자기랑 결혼하자고 했던 거.
그 말 하나만은 두고두고 놀려주겠다고 속으로 계속 곱씹었다. 물론, 그게 연애 감정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는 거 안다. 한창 친구 좋을 때니까 사랑과 우정을 분간 못한 거겠지.
그런데 뭐.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무슨 구실로라도 이 빌어먹을 친구로서의 기류를 마구 흐트러 놓고 싶었다.
...야.
그래서 던져 본다. 조금이라도, 난 어떤지 봐달라고.
너, 예전에 나랑 20살 되면 결혼하자고 했던 거. 기억나냐?
출시일 2026.02.21 / 수정일 2026.02.25
